세종문화회관서 '세일즈맨의 죽음' 막 올려

중앙일보

입력

벤처가 뜨는 시대다. 번듯한 아이디어로 큰 돈을 만졌다는 사람이 많다. 재주있는 직장인들은 속속 회사를 떠난다.

이런 시절에 '세일즈맨의 죽음' 을 얘기하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세일즈맨의 화려한 재탄생' 이 각광받는 세상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립극단(단장 김의경)이 의욕적으로 준비한 미국 작가 아서 밀러(1915~) 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 (김도훈 연출.12~30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은 다소 실기(失機)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두가 벤처인은 아닌 법. 오히려 대부분의 남성은 오늘도 직장에서 밀리고 집에서도 외롭지 않는가.

때문에 문제는 세일즈맨의 비극적 일생을 담은 원작을 얼마나 감동 깊게, 그리고 설득력이 크게 형상화 하느냐에 달려있다.

1949년 발표된 '세일즈의 죽음' 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됐던 작품이기에 더욱 그렇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두 아들로부터도 무시 받으며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의 그릇된 윤리에 짓눌려 파멸해가는 주인공 윌리의 캐릭터 자체는 일반 관객에게 신선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캐스팅은 기대가 간다. 중견배우 이순재가 92년 '밤으로의 긴 여로' 이후 8년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했다.

게다가 그는 23년 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개관기념으로 공연된 '세일즈맨의 죽음' 에서도 윌리역을 열연해 이번 무대와 인연이 각별하다.

그동안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해온 그의 농익은 기량이 기다려진다.

윌리의 아내역 린다도 중견배우 윤소정이 맡았다.

작품에 따라 성공적 변신을 거듭해온 그는 이번에 몰락해가는 남편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아내를 연기하게 된다.

23년 전 이순재에게 샴페인을 가져다 주는 단역으로 출연했던 김갑수가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다 나중엔 거세게 저항하는 맏아들 비프로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결국 이들 세 명의 호흡과 융화가 작품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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