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현대 인사 파문]

중앙일보

입력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의 인사파문을 둘러싼 현대그룹의 내홍은 결국 정몽헌(鄭夢憲)회장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내정 인사는 백지화됐으며, 정몽구(鄭夢九)회장은 현대자동차에만 전념하도록 정리됐다.

이에 따라 정몽헌 회장의 외국 출장 중에 정몽구 회장 쪽이 취했던 금융 계열사 경영권 장악기도는 결국 물거품이 된 셈이다.

정몽헌 회장은 24일 오후 귀국하자 마자 이익치 회장과 함께 가회동 자택으로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을 찾아가 20여분 동안 만나 현안을 매듭지었다.

◇ 금융 계열사는 결국 정몽헌 회장에게로〓이번 인사파문의 핵심인 현대증권은 현대그룹 금융 계열사의 기둥이다. 현대는 보험분야를 이미 계열분리한 상태여서 증권을 중심으로 투신.캐피털 등 6개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다.

현대캐피털은 정몽구 회장 계열의 현대자동차가 대주주이고, 현대투신증권은 정몽헌 회장 계열의 현대전자가 대주주로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

문제는 현대증권인데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현재 현대상선이며,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는 정몽헌 회장이다. 따라서 정몽헌 회장 측근인 이익치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하기로 내정했던 것은 금융 계열사의 경영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

정몽구 회장측은 지난 14일의 인사 내정이 鄭명예회장의 재가를 받았으며, 38년동안 살아온 청운동 자택을 물려준 것도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회장을 후계자로 굳힌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24일 정몽헌 회장이 鄭명예회장을 직접 만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내정 인사를 백지화함으로써 금융 계열사를 앞으로 맡게 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 鄭명예회장의 의중은 정몽헌 회장으로 기울어〓현대 계열사의 경영권 향배는 鄭명예회장의 뜻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창업자로서 현대의 엄격한 가풍에 비춰볼 때 그의 말은 곧 현대맨들에겐 법으로 받아들여진다. 鄭명예회장은 법적으로도 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과 지주회사 격인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다.

그러나 그동안 鄭명예회장은 분명하게 의중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익치 회장 인사 파문으로 현대그룹에 나라 안팎의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24일 사실상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鄭명예회장은 지난 23일 가족모임까지만 해도 후계 구도와 관련된 '중대 발언' 은 없었다. 참석자들은 "명예회장은 주로 형제분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아들 중 누구를 지목하거나 부른 적은 없었다" 고 말했다.

24일 열린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는 2대 주주인 정몽준(鄭夢準)의원을 이사에서 제외했으나 최대 주주인 鄭명예회장은 이사로 재선임했다. 鄭명예회장은 오는 29일의 현대건설 주총에서도 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그룹내에서는 鄭명예회장이 창업자로서 그룹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계속 간여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 鄭명예회장, 그룹경영과 집안대물림을 분리한 듯〓鄭명예회장이 이사한 서울 가회동 새집에는 종전에 살던 사람의 문패가 22일 이사 당일까지 붙어 있었다.

이 집에 살던 사람도 鄭명예회장이 이사오기 전날에야 이사했으며, 현대 직원들이 21일 밤부터 밤새 이삿짐을 날랐다. 정몽구 회장은 다음주 중 鄭명예회장이 물려준 청운동 집으로 입주할 계획으로 현재 도배와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고 현대측은 전했다.

현대 관계자는 "명예회장이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하셨다" 고 설명했으나 이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관계자는 "명예회장은 장자(長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면서 ' "청운동 자택을 물려준 것을 후계구도에 대한 '결심' 으로 봐도 된다" 는 말했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측은 "단순한 이사이며,가족모임도 집들이였을 뿐" 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현대그룹의 미래는 경영능력이 탁월한 정몽헌 회장에게 맡기기로 결심하면서 사실상의 장남인 정몽구 회장에게는 자신이 40년간 살아온 집을 물려줘 애정을 표시한 것" 이라고 해석한다.

김시래.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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