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일방적인 양보

중앙일보

입력

드디어 신년 벽두부터 야구계는 물론이고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던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의회) 문제가 문화관광부의 중재에 의해 선수협의회 선수들의 대폭적인 양보로 타결이 되었다.

선수협의회와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및 구단 간의 3자 회동결과 다음과 같은 사항을 합의를 했다.

1. 선수협의회는 금년 시즌 종료 후 결성하는 것으로 한다.
2. 선수협의회 집행부는 시즌 종료 후 선출된 각 구단의 선수대표로 한다.
3. 현재 선수협의회 소속선수는 시즌 중 선수협의회 활동을 중지하고 소속팀에 복귀하여 야구활동을 한다.
4. 구단 및 KBO은 현 선수협의회 소속 선수에게 일체의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한다.
5. 제도개선위원회 구성방법 등은 문화관광부의 안에 따른다.

-제도개선위원회 구성(11명)
KBO 1명, 선수대표 2명, 구단대표2명, 야구인 3명, 공익대표 3명

-제도개선위원회 발족시기: 2000. 4. 3

지난 1월 22일 새벽 우여곡절 끝에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발족된 선수협의회는 50일 가량 걸친 투쟁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번 타결은 합의서 내용만으로 보면 제대로 얻은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거의 양보로 끝났다고 해서 무방하다.

타협 혹은 협상을 할 때는 양보해야 할 부분이 있고 반드시 얻어내어야 할 부분이 있다. 선수협의회는 무엇보다도 문서로 보장을 받아 내어야 했던 선수협의회 및 현 대표진들에 대한 인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90%가 훨씬 넘는 지지를 받은 현 선수협의회 대표들은 분명히 총회를 해서 선출된 자들이다. 이런 대표들에 대한 인정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구단과 KBO에서는 선수협의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선수협의회 측에서는 구두로 약속을 받아 내었다고 하나 그동안의 구단과 KBO 의 행태를 보면 합의서의 문구로만 따지면서 언제 오리발을 내밀지 모른다. 그러기에 합의서에 현 대표진들의 대표성에 대한 구단과 KB가 인정한다는 문구를 반드시 기입을 했어야 했다.

또한 1항의 문구는 해석함에 있어 혼선이 있을 수 있다. 몇 몇 언론이 생각하는 것처럼 해체라고도 볼 수도 있고 선수협의회의 주장처럼 활동유보로도 볼 수 있다. 이 문구에 대해 선수협의회와 구단/KBO 는 문제의 소지를 낳지 않기 위해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구단과 KBO는 이번 협상에서 잃은 것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와중에 이번 협상은 그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주었을 뿐이다.

선수협의회 선수들에게 일체의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구단이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팀 전력을 위해서라도 선수협의회 소속 선수들에 대한 불이익은 구단에 전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불이익을 줄 만큼 용감무쌍(?)한 구단은 이제 없다.

제도개선위원회의 구성에서 마치 구단이 양보한 것처럼 주장을 하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제도개선위원회는 허울만 좋을 유명무실한 기구일 뿐이다. 선수협의회 쪽에서는 너무 제도개선위원회 구성에만 신경을 썼다.

이런 가운데서도 의미를 둬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 선수협의회와 구단 그리고 KBO는 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에 인식을 같이 하고 양보할 명분을 찾기에 골몰했다. 선수협의회는 대폭 양보를 하는 아량을 보여주었으며 구단과 KBO는 무시했던 선수협의회의 존재를 인정하는 등 한발씩 물러선 것이 문제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몇 가지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이런 대타협을 야구계 당사자끼리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화관광부의 어설픈 중재로 이어진 것이 "옥에 티"로 남지만 서로가 살아야 하는 조건 속에서 극한 대립보다는 대화와 양보로 타결책을 찾아낸 것은 분명히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신종학 : 선수협의회를 지지하는 '팬들의 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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