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또 다른 기준 라포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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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환자 말에 귀 기울일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미국 버지니아텍 의대의 신입생 선발 방식이 국내 의료계에서 공감을 사고 있다.

버지니아텍은 ‘의사가 되려면 말하는 법부터 배우라’는 취지에서 의대 지원자들에게 스피드 퀴즈 형식의 다중 면접을 의무화하고 있다.▶<본지 7월 13일자 3면>

 의사 경력 46년째인 비에비스 나무병원 민영일 원장은 “환자 말을 잘 듣는 것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포르(rapport·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며 “환자는 의사의 ‘스펙’ 못지않게 ‘라포르’를 ‘명의’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의 얼굴 대신 컴퓨터 화면만 응시하고 환자와의 대화(문진) 대신 검사부터 받도록 유도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민 원장은 “CT·MRI 등 고가 의료장비는 환자 몸에 나타난 현상을 읽는 것”이라며 “증상을 알려면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의료계에서 이런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9년부터 의사 국가시험 실기 시험에 환자를 대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포함됐다. 시험은 환자 역을 맡은 일반인과 수험생의 문답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양대병원 가정의학과 박훈기 교수는 “첫해엔 일부 수험생이 사극에서처럼 등을 보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퇴장하는 등 가식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차츰 진정성이 우러나고 있다”며 “이런 시험과 교육 효과가 나타나면 환자·의사 관계가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의예과 신입생을 뽑을 때는 아직 버지니아텍 의대 같은 시도는 없다. 국내 의예과 입시 전형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의예과는 전국 상위 0.5% 이내에 들어야 진학할 수 있다”며 “전형 과정에 면접이 포함된 경우도 있지만 인성 면접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유광사(70) 여성병원장은 “가장 유능한 의사는 실력보다 환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설득의 힘을 갖춘 사람”이며 “성적 순으로만 의사를 뽑을 것이 아니라 인성이 바른 의사를 선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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