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영어·매너 ‘월드 스펙’ … 뉴 박세리 키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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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유소연 선수(왼쪽)와 서희경 선수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승자인 유 선수와 패자인 서 선수 모두 밝고 돋보였다. 그들은 경기를 즐겼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AP=연합뉴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는 유소연.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이터=뉴시스]

유소연(21·한화) 선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린으로 뛰어 들어온 아버지가 아니라, 박세리(34)·지은희(24)·김송희(23·하이트) 등 동료 선수들의 샴페인 축하를 받았다. 경기를 중계한 미국의 지상파 방송 NBC는 연장전에서 패한 서희경(25·하이트) 선수에게 불쑥 마이크를 들이댔다. 서 선수는 졌지만 밝은 표정과 막힘 없는 영어로 “유소연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오늘처럼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관계기사 33면>

 한국 여자 골퍼들이 1, 2위를 석권했다. 12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에서 유소연 선수가 우승, 서희경 선수가 준우승했다. US오픈은 대회 명칭 그대로 미국 타이틀이 걸린 대회다. 여자 골프 대회 중 전통이나 권위, 상금 면에서 모두 최고다. 현지 중계 해설진은 “한국은 세계 랭킹 100위 이내에 35명이 있으며 이번 대회에도 36명이 참가했다”면서 “LPGA 투어를 강력히 지배한다”고 평했다.

 한국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우승자 유소연 선수도 우승 기념사를 영어로 술술 말했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 선수들 때문에 투어가 망한다는 비난을 들었던 것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두 선수는 이른바 월드 스펙이다. 어릴 때부터 세계 최고를 겨냥해 공부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행동을 하며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필드에 나타난 뉴(NEW) 박세리 키즈다.

 유소연 선수는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부모는 유 선수를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려 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 사업이 잘 안 돼 집안이 기울기도 했지만 유소연은 대원외고를 졸업했고 연세대(체육교육과)에 다니고 있다. 체육 특기생이지만 학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서희경 선수도 분당에서 큰 수퍼마켓을 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컸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국제적인 감각을 배웠고 패션 센스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LPGA 투어 KIA 클래식에서 우승할 때 유창한 영어와 뛰어난 매너로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3년 전 그들의 우상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을 제패할 때, 한국은 경제난을 겪었다.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샷을 한 끝에 우승한 박 선수는 눈물을 글썽였다. 누구도 상상 못할 고생 끝에 따낸 눈물의 트로피였다.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뒤 13년이 지났다. 한국 선수들은 질과 양면에서 LPGA 투어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골프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하는 지위에까지 올랐다. 큰 회사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옷차림과 매너, 팬들을 대할 때의 세련미까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유소연 선수는 “박세리 선수는 나의 골프 영웅이다.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우승해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했다. 유소연 선수는 미국 투어가 아니라 한국 투어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유소연 선수는 반드시 미국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머니 조광자(55)씨가 실질적인 매니저 역할을 하는데 “미국투어에 가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 싫어서” LPGA에 가지 않고 있다. 유 선수는 서 선수와 3언더파 281타로 동타를 이룬 뒤 연장에서 3타 차로 이겼다.

우승 상금은 58만5000달러(약 6억2300만원), 준우승 상금은 35만 달러(약 3억7400만원)다.

성호준 기자

◆월드 스펙(World spec)=해당 분야의 실력뿐 아니라 영어(외국어), 매너, 패션 감각 등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모든 요소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어릴 때부터 세계 최고를 겨냥해 공부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행동을 익히며 자란 젊은이들이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한화그룹 골프선수

1990년

[現] 하이트맥주 골프선수

1986년

[現] 골프선수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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