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막던 연구원 커플, 해커 잡는 ‘투캅스 부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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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추현탁(오른쪽)·류정은 경장 부부가 지난해 11월 결혼을 앞두고 경찰 제복을 입고 총을 쏘는 모습을 연출한 웨딩사진. [류정은 경장 제공]

“경찰관 안 하면 나랑 헤어질 줄 알아.”

 여자친구의 한마디에 남자는 국내 최고의 컴퓨터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를 나와 경찰관이 됐다. 사내 커플이던 여자친구도 이듬해 남자를 따라 경찰에 입문했다. 경찰 사이버 수사요원 특채 전형에 지원해 한 해 간격으로 합격한 추현탁(33)·류정은(34·여) 경장 부부 얘기다.

2009년 합격한 추 경장은 현재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지난해 합격한 류 경장은 서울 용산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06년 초 안철수연구소의 공채 1기 동기로 처음 만났다. 몸무게가 110㎏에 육박했던 추 경장은 6개월 동안 30㎏을 빼며 한 살 많은 류 경장에게 구애를 했다.

2007년 8월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연구소 일을 할수록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다. 특히 청소년 사이버 범죄가 늘어 골치가 아파지면서 ‘내가 직접 수사해서 이걸 다 뿌리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추 경장이 먼저 경찰에 들어간 건 류 경장 때문이었다. 추 경장은 경찰 특채에 합격하고도 고민에 빠졌다. 경찰에서 합격 이틀 만에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해야 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이때 류 경장은 “남자가 왜 이렇게 줏대가 없어? 지금 경찰학교 안 들어가겠다면 그만 만나고 싶어”라고 으름장을 놨다. 경찰에 입문한 추 경장은 경찰이 자기의 천직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경찰은 관료적인 조직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수사를 해보니 제 주관대로 조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더라고요.”

 만족스러워 하는 추 경장의 모습에 류 경장도 이듬해 같은 길을 택했다. 지난해 특채의 경쟁률은 23대 1이었다. NHN·삼성·LG 등 쟁쟁한 회사에서 사이버보안업무를 담당하던 실력자들이 지원했다. 국가정보원 보안인증평가자격증 등 7개의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류 경장은 14명의 합격자 중 1등으로 선발됐다.

 류 경장이 경찰에 들어와 처음 맡았던 사건은 커뮤니티사이트 싸이월드의 해킹 사건. “해커를 잡고 보니 불우한 환경에 놓인 고등학생이더라고요. 연구소에 있었다면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 하기만 했겠죠. 호기심에 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해킹해서 도토리를 훔친 건데 청소년들이 사이버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계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결혼에 골인했다. 류 경장은 최근 인터넷 도박사이트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추 경장도 전공인 해킹·악성코드 범죄 수사에 여념이 없다.

부부는 “전 직장에 다닐 때보다 월급이 100만원씩은 줄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류 경장은 “법률 공부를 따로 한 것이 아니어서 민원인들이 사건처리에 관해 질문을 하면 식은 땀이 흐르기도 한다”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사이버 수사관 부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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