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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천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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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승거목단 수적천석(繩鋸木斷 水滴穿石)’. 먹줄로 톱질해도 나무가 잘리고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돌이 뚫린다는 뜻이다. 중국 북송 때 숭양 지방의 사또 장괴애(張乖崖)가 한 말이라고 송나라 학자 나대경(羅大經)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전한다. 장괴애가 관아 창고에서 엽전 한 닢을 훔친 관원을 신문하는 대목에서다. 엽전 한 닢이 무슨 큰 죄냐고 관원이 항변하자 ‘일일일전 천일천전(一日一錢 千日千錢·하루 한 푼일지라도 천 일이면 천 푼)’이라며 덧붙인 게 바로 이 말이다.

 당시 정황으로 보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굳어졌다. 명나라 홍자성(洪自誠)이 『채근담』에서 ‘승거목단 수적천석’을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견지해야 할 자세로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부단한 정성과 노력의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말엔 ‘우공이산(愚公移山)’도 있다. 『열자(列子)』‘탕문편’에 보인다. 우직하게 한 가지 일을 계속 물고 늘어지면 하늘을 움직여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거다.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이 즐겨 사용했던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하루 전까지 사저에 걸어 두었던 액자 글귀도 ‘우공이산’이다. 당나라 때 시선(詩仙) 이백에게 학문의 자세를 일깨운 ‘마부작침(磨斧作針)’은 어떤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의 함의(含意) 또한 끈기와 정성이다.

 ‘정성(精誠)’은 유·불교에서 삶의 바탕으로 가르치는 덕목이다. 『중용』에서 정성은 하늘이 준 도리이고 정성을 실현하는 게 사람의 목표다. 그래서 ‘무성무물(無誠無物·정성스럽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음)’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얻는 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정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구하면 반드시 얻는다”는 『잡보잠경』의 가르침이 그 예다.

 평창의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은 10여 년간의 ‘부단한 정성’이 이뤄낸 쾌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100명이 넘는 IOC 위원을 일일이 만나 표를 그러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두고 “수적천석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찌 이 회장뿐이겠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정성 외교’를 펼친 이명박 대통령부터 온 국민이 정성을 모은 결과일 터다. 정성은 정말이지 세상을 바꾸는 모양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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