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토종 사모펀드, 우리금융 인수 자격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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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사모투자전문사(PEF)가 과연 우리금융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가.” 최근 PEF의 우리금융 매각입찰 참여를 놓고 논란이 많다.

 PEF의 자격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왜 금융지주사가 매각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는가다. 답은 명확하다. 우리금융 인수가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매력이 없을까. 덩치가 너무 커서, 비즈니스가 겹쳐서, 특정 자회사만 원하는데 그룹 전체를 사야 하니까 등 이유는 다양하다. 현실이 이러한데 왜 자꾸 거들떠보지도 않는 앞 동네 금융지주사 총각에게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옆 동네와 뒷동네의 훌륭한 총각이 많은데 말이다. 세간의 주장을 보면 금융지주사는 반드시 금융지주사가 인수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을 깔고 있는 듯하다. 틀린 가정이요, 주장이다.

 물론 금융지주사가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현실성 없는 최선에 얽매여 무한정 민영화를 미룰 것인가, 아니면 PEF를 통해 차선의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금융이 공기업이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금융사가 이렇게 오랫동안 공기업으로 있는 것은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

 조금 길게 보면 PEF 인수는 금융지주사 인수와 상호 배치되지 않는다. PEF는 기업에 대한 성형외과 전문의다. 살도 빼고 근육도 만들고 필요하면 성형수술을 통해 매력적인 인수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PEF의 기능이다. 그러면 오지 말라고 해도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찾아올 것이다. 시각을 넓혀 보면 PEF를 거치는 것이 오히려 장래에 금융지주사의 인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혹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사례를 들어 PEF의 우리금융 인수를 반대한다. 설득력 없는 논리다. 인수 입찰에 응모한 PEF는 모두 한국의 토종 PEF다. 운용사도 한국 운용사이고 대부분 투자자도 한국의 기관투자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금융의 가치가 높아지면 그 몫은 한국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과거엔 이런 토종 PEF가 없었기 때문에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이 헐값으로 외국의 PEF에게 넘어갔다. 여기에 ‘먹튀’ 논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물론 PEF 운용사가 금융지주 경영에 전문성이 있는 주체는 아니다. 하지만 인수 시 금융지주사를 경영할 전문 최고경영자(CEO)를 동반하고 들어오면 된다. 시장에서 찾아도 되고 능력만 있다면 현재의 경영진도 좋다. 경영진 후보의 전문성은 미국에서도 PEF가 은행이나 금융지주사를 인수하려 할 때 규제 당국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다. 투자자 차원에서는 앞으로 우리금융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 금융지주사가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금은 호감도가 충분치 않지만 차후에 배우자가 될 정도로 매력적으로 변하면 인수해 결혼하면 된다. PEF는 철저히 시장가치 올리기를 지향한다. 하지만 과거 외국 PEF에 대해선 부정적 인식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PEF는 달라야 한다.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물적 자본보다 인적 자원이 더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경험 많고 충성심 있는 기존 인적 자원을 최대한 보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 당국 입장에선 자격요건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PEF라고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봐줘서도 안 된다.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관련 규정과 CEO 후보의 금융전문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한국의 PEF는 실로 크게 성장했다. 얼마 전 타이틀리스트 같은 세계적 기업도 인수했다. 미국의 대표적 PEF인 블랙스톤은 2009년에 뱅크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PEF를 우리금융 인수후보자로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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