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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수퍼 판매 윈-윈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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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

보건복지부가 감기약 수퍼 판매 관련 법안을 9월 국회에 제출한다고 한다.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4일 일반약 수퍼 판매 정책 혼선과 관련해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퍼 판매를 반대하며 약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던 복지부가 이제야 국민을 정책의 중심에 놓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국회에 법률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정부의 책임이 끝나지 않으니 미리 국회를 상대로 설득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의약품의 수퍼 판매와 관련, 그동안 정부와 이해집단이 보여준 모습을 보면 ‘국민이 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2000년 의약분업 시행 후 10년 동안 국민들의 요구가 변하고 있는데도 일반의약품의 약국 판매만을 고집해온 복지부의 진의가 의심스러웠다. 약사회도 감기약 수퍼 판매를 반대해오다 최근 여론에 밀리게 되자 대신 상당수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꿔 처방전 없이 팔게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국민 편의는 뒷전이고 자신들의 수입 감소만 걱정하는 것 같아서다.

 국민들이 수퍼에서 팔라고 요구한 약은 의사 도움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 아니다. 단지 감기약이나 해열제·진통제 등의 대증적인 일반의약품이다. 복지부는 까스명수 같은 약을 ‘의약외품’이라는 제품군으로 지정해 이달 말부터 수퍼에서 팔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방침만으로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의약외품에 감기약이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약을 수퍼에서 팔게 되면 여러 가지 사회적 혜택이 생긴다. 우선 의약품의 가격경쟁이 촉발돼 환자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나아가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개인들이 가벼운 감기 등을 앓을 때 수퍼에서 해결하면 병·의원 가는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면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의약품 비중도 장기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가벼운 병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환자의 자기 결정 권리도 향상된다.

 이제 일반약 수퍼 판매는 큰 고비를 넘겼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의약품 분류를 논의할 때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인공눈물과 같은 안전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전문약을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차제에 약품 분류는 의사와 약사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자. 필요하면 상시적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반약을 수퍼나 편의점에서 팔되 동네 구멍가게까지 파는 것은 곤란하다. 의약품을 안전하게 관리 판매할 수 있는 장치가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약을 팔려는 편의점이나 수퍼마켓이 일정 기간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수퍼에 공급한 의약품을 통제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회수할 수 있는 관리 체계도 필요하다. 약국도 생필품이나 대체의약품 등을 팔아서 수익을 메우려는 곳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영세한 약국들이 매장 규모를 키워 서구식 ‘수퍼형 약국(드러그스토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