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S&P ‘그리스 구제작전’에 딴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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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가 그리스 구제 작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S&P는 4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프랑스 채권 은행들이 마련하고 있는 차환발행(롤오버)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리스가 만기가 늘어난 새 국채로 채권 은행들의 기존 채권을 상환하는 것(롤오버)을 채무불이행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S&P는 “프랑스 시중 은행들이 준비 중인 롤오버가 시행되면 채권자들은 원금과 이자 일부를 손해 볼 수밖에 없다”며 “그들이 보유한 채권 440억 달러(약 47조9000억원)의 80% 정도만 롤오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20%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사실상 탕감된다. 이는 디폴트의 교과서적인 기준, 채권의 원리금 가운데 일부라도 약속한 날짜에 지급되지 않으면 디폴트라는 기준에서 보면 채무불이행이다.

 S&P가 모든 그리스 채권에 당장 디폴트 등급인 ‘D’를 매기진 않는다. “우선 올해 안에 만기가 되는 채권에 D등급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S&P는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S&P가 일단 D등급 딱지를 붙이면 글로벌 시장에선 이후에 만기가 되는 그리스 채권 값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 디폴트 사태가 난다는 얘기다. 채권자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채권 은행들은 롤오버를 의논하기 시작하면서 “독일·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두 나라 정부는 신용평가회사들과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일이 채권 은행들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날 S&P의 성명에 이어 무디스도 협조할 뜻이 없음을 사실상 밝혔다.

 무디스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는 롤오버 계획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무디스가 채권 은행들의 롤오버를 감안해 그리스 신용을 평가해줄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무디스는 “은행들이나 관련 정부들이 의사를 결정하면 우리는 이미 시장에 천명한 신용평가 기준과 방법에 따라 그리스 채권을 평가하겠다”고 못 박았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영국 런던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최근 그리스 사태가 진정되기 위해선 긴축·민영화, 구제금융, 롤오버 등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신용평가회사들의 원칙적인 접근법 때문에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롤오버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5일(한국시간)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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