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자동차업계 연비 놓고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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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백악관과 자동차업계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내년부터 적용될 새 연비 및 배출가스 기준을 둘러싸고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는 2009년 5월 자동차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구상을 발표했다. 연비를 내년부터 2016년까지 L당 15㎞ 이상으로 높이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년 규제 도입을 앞두고 미 정부는 목표를 한 단계 더 높였다. 2025년까지 L당 23.8㎞ 이상으로 맞추라는 것이다. 현재보다 연비를 두 배 가까이로 높이라는 얘기다.

 오바마 정부가 자동차 연비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미국의 자동차 연비 기준은 유럽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다. 1970년대 업계 로비로 기준이 낮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졌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늘었다는 게 오바마 정부의 판단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빅3’ 자동차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연비가 낮은 대형 승용차에 주력한 체질 때문이었다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러나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2025년까지 연비를 두 배로 끌어올리자면 수백억 달러의 투자가 들어가야 한다. 주력 자동차 모델도 중소형으로 바꿔야 하는데 가격은 지금보다 오히려 비싸진다. 이 같은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면 미국 소비자가 적응하겠느냐는 게 자동차업계의 우려다.

미국 자동차제조협회(AAM) 글로리아 버귀스트 부사장은 “L당 23.8㎞를 맞추는 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며 “다만 그런 차를 소비자가 과연 사줄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정부의 목표를 맞추자면 현재 3%인 전기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자면 정부가 전기자동차 충전소 보급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반발에 정부 내에서도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 L당 23.8㎞는 정부의 희망일 뿐 최종 기준은 이보다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지만 환경단체는 “연비 기준에 자동차업계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데 기준까지 완화하는 건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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