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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통 중인 한·미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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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석한
변호사·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위한 계획을 내놓았다. 오바마는 의회가 8월 휴회에 들어가기 앞서 한·미 FTA 협정을 비준해 주기를 희망한다. 한·미가 FTA 협상을 타결한 지 4년 만이다. 그 사이 두 나라는 협상안을 대폭 수정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계획대로라면 미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이 먼저 심의하고 이어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검토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환경 아래에서 위험한 정치적 도박을 시작한 느낌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논란이 많은 무역조정지원(TAA) 제도의 연장과 한·미 FTA를 묶어 의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가 두 가지를 모두 얻기 위해선 몇 가지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촉박한 시일 안에 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TAA의 연장이다. 이 제도는 미 노동자들이 무역 때문에 해고되면 보상하는 프로그램이다. 민주당은 연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오바마는 이를 한·미 FTA 비준과 연계시켰다.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하고 있어 결국 한·미 FTA 비준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특히 요즘 화두인 재정 긴축을 감안하면 더욱 어려울 성싶다. 실제로 최근 공화당 핵심 상원의원들은 금융위원장 맥스 보커스 의원이 주도한 한·미 FTA와 조정제도 청문회를 보이콧했다. 그러자 하원 의장인 존 베이너 의원 등 하원의 공화당 실세들은 한·미 FTA와 조정제도 연장을 분리해 처리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그들은 먼저 TAA 연장을 부결하고 한·미 FTA를 통과시키길 바란다. 반면 백악관은 “두 가지 안건을 분리해 의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째 걸림돌은 백악관이 한·미 FTA를 미국이 남미 콜롬비아나 파나마와 맺은 자유무역협정과 묶어 처리하려는 점이다. 이는 오바마가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반대하고 있다. 하원 세입위원회 실세인 민주당 샌더 레빈 의원은 콜롬비아-미국 FTA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가 노동계를 탄압하고 있다는 이유다. 레빈의 반대로 한·미 FTA 비준이 원천봉쇄되지는 않겠지만 하원 심의과정을 꼬이게 할 수는 있다.

 세 번째 걸림돌은 무역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데 있어 신속처리 절차다. 이 절차에 따르면 미 의원들은 비공식적으로 법안을 미리 검토할 수 있다. 이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의원들의 수정의견을 꼭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원들이 어떤 조항을 달가워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촉박한 시한도 백악관 쪽에 걱정거리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에는 워싱턴의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민주당 쪽은 FTA 협정이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오바마가 8월 의회 휴회 이후에 FTA 법안들을 처리하기엔 정치적 비용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가 8월 휴회 전에 FTA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현 단계에서 한국이 미 의회 비준을 촉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과 협상에서 최선을 얻어냈다고 만족해 했다. 미 의회 비준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오바마 자신도 FTA 비준에 상당한 이해가 걸려 있다. 최근 그는 한·미 FTA가 미국의 수출과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되풀이 말했다. 그가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몇 주 뒤면 그가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벌인 도박이 성공적이었는지 드러날 것이다.

김석한 변호사·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