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박찬일의 음식잡설 ⑨ 육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페이스북으로 세상을 뒤흔든 마크 저커버그는 확실히 괴짜 자질이 있다. 최근 외신은 그가 “직접 도살한 고기만 먹겠다”고 선언한 사실을 알렸다. 언뜻 들으면 그다운 ‘돌출 행동’이구나, 하고 웃어넘길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속내는 좀 달랐다. 인간이 고기를 먹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의문 제기였던 것이다.

 필자 세대는 고기 귀한 줄 알고 자라났다. 어쩌다 단백질을 보충하려면 아버지가 시장에 나가 산 닭 한 마리를 사오셔야 했고 그 도살의 현장을 지켜봤다. 마을 잔치에 쓰이는 돼지를 잡는 장면도 흐뭇한 축제의 기억 저편에 저장되어 있다. 돼지가 가진 생명의 무게감을 가슴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 생명체다. 채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지만 인간이 잡식동물이라는 사실은 엄정하다. 마이클 폴란이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것도 그런 토대에서였다. 기왕 고기를 먹도록 유전된 인류라면 어떻게 먹는 게 올바른가에 대한 탐구였다. 저커버그와 폴란의 생각은 결국 당대 세계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일직선상에서 만난다. 저커버그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바로 ‘어떻게 하면 인간이 지구에 피해를 덜 끼치고 살 것인가’ 하는 실천의 한 방식이다.

 그는 친생태적인 요리를 하는 유명 요리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서 직접 염소를 잡고, 돼지를 죽이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닭을 잡아 요리하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인간이 숙명적인 생존을 위해 동물을 죽일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는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저커버그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수퍼마켓에서 공산품을 사듯이 고기를 사는 행위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십분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토론할 상황에 처한 건 맞다.

 저커버그가 직접 도살을 들고 나온 것은 우리가 이대로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 하는 반성에서 기인한다. 세계적으로 고기 소비는 폭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환경 파괴와 건강 문제는 재차 거론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인간의 편의를 위해 비참한 사육을 당하는 동물 윤리 문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직접 도축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원한다고 언제든 식탁에 고기를 올릴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고기 소비량이 줄어든다. 고기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뛰어난 방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비자가 직접 도살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수퍼마켓에서 팔리는 고기가 한때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건 온당하다. 어떤 과격한 생태론자는 초등학교 과정에 도축장 견학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기가 결코 컨베이어 벨트에서 만들어지는 ‘마블링 수놓은 단백질’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붉은 살코기 한 토막을 얻기 위해서는 도살과 가죽 벗기기, 내장과 기름 제거 등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끔 해야 한다. 촉감도 깔끔하게 뽀드득한 랩에 싸여 바코드가 붙은 채 팔리는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도 말이다.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교육 방법으로 고기에 대해 가르칠 필요는 있다. 고기를 결코 영양학의 일면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음식이 칼로리로만 환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고기에 포함된 단백질과 지방·무기질 외에도 생명이 흘린 피에 대한 수고와 겸손도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도살되는 과정을 이해하면 음식에 대한 경외와 존중, 감사를 하게 된다. 함부로 고기를 먹는 일도 줄고, 필요한 만큼만 가축을 기르게 된다. 인간 중심의 역사에 대한 신의 경고로 일컬어진 광우병도 결국은 고기 이전에 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고기 먹는 방법에 대한 호사가의 갑론을박이 들린다. ‘마블링 스코어’가 들먹거려지고, ‘드라이 에이징’이냐 ‘웻 에이징’이냐 따지기도 한다. 맛있는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슬로푸드협회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참고할 만하다.

 “환경에 대한 고민 없는 미식가는 바보일 뿐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