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나이 든다고 절로 속이 차지는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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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입니다. 문은 외양을 말합니다. 질은 내면을 의미하고요. ‘빛날 빈’자가 두 갭니다. 그러니까 문질빈빈이란 외양도 아름답고 내면도 충실해 조화로운 상태를 일컫습니다. 공자는 내면에 비해 외양이 지나치면 야하고, 내면은 좋아도 외양이 떨어지면 촌스럽다고 했습니다. 외양과 내면을 모두 갖춰야, 즉 문질빈빈해야 비로소 군자답다는 겁니다.

 그런데 야하고 촌스러운 모습이 참으로 많이 보입니다. 촌스러운 건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겉모습만으로 내면을 짐작하기는 섣부르니까요. 공자조차 외모로 판단했다 낭패를 겪은 일이 있잖습니까. 큰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다는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의 주인공 자우(子羽) 말입니다. 자우는 외모가 아주 추했다지요.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지만 공자는 못생긴 얼굴을 보고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훗날 자우는 강남 일대를 주유하면서 여러 제후한테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따르는 제자만 300명에 달했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공자는 “용모로 사람을 얻다 자우를 잃었다”고 탄식했다지요.

 잘못 말하고 탄식하느니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상책입니다. 하지만 야한 건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반쯤만 떠도 지나친 외양들이 수없이 눈에 띄니까요. 화려하고 튄다고 야한 게 아닙니다. 제 자리에서 과한 것, 제 주제 제 분수에 어긋나는 게 바로 야한 거지요. 둘러보세요.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 지위에 넘치는 권력을 탐하고 행사하려는 권력형 인간들 모습이 야합니다. 제 주머니 것 아닌 걸 가지려고 숨기고 속이고 감추고 빼앗는 재물형 인간들 모습이 야합니다. 주인은 안중에도 없이 제 밥그릇 싸움질을 하는 종들의 모습이 야합니다. 백성의 대리자를 자처하고 나서서 파벌의 사익을 위해 핏대를 올리는 위정자들 모습이 야합니다. 그렇게 야한 외양을 뒤집어쓰고도 야한 줄 모르는 군상들이 참으로 야하고 또 야합니다.

 왜 모를까요? 이 사회 파워그룹에 끼어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그것도 모를까요? 바로 여러분 나이 때부터 훈련이 돼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질빈빈하기 위한 훈련 말이지요. 저들만 야한 게 아닙니다. 미래가 보이기에 야한 젊음은 더 딱합니다. 교과서, 전공서적 말고는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으면서 브이 라인, 초콜릿 복근에 목숨을 거는 모습이 야합니다. 분에 넘치는 명품 백, 명품 가방을 탐하면서도(럭셔리를 명품으로 번역하는 상술의 희생자이긴 하지만) 스스로는 명품이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이 야합니다. 부모가 요금을 내는 온갖 스마트 기기로 바보놀이를 하면서 젊음을 낭비하는 모습이 야합니다. 얼마 전 부모가 사준 외제 스포츠카로 야밤 도로에서 생쇼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된 정신 나간 젊음은 야하다 못해 천박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젊음이 나이 먹는다고 절로 속이 차는 게 아닙니다. 노인이 돼서도 내세울 건 나이밖에 없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몇 해 전 자기 성질 못 이겨 남대문에 불을 지른 사람이 적은 나이였나요? 그처럼 노추한 인생이 되도록 내버려둬서야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외양에 걸맞도록 내면을 다듬어야 합니다. 공자의 180년쯤 후배인 맹자는 “사람들이 닭과 개를 잃으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모른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문의 도란 다른 게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라고 설파했지요.

 여러분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바로 그래섭니다. 아름답게 포장된 외양에 부끄럽지 않은 내면을 되찾기 위해서란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파워그룹에 끼었을 때 백성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도록 마음을 단련하는 게 공부란 말입니다. 잃어버린 마음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서둘러 되찾아 다잡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외양에 비해 모자라는 내면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겁니다.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다른 얘기가 아닙니다. 서양식으로는 이렇게 표현됩니다. 맹자보다 2000년 가까이 후배인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한 말입니다. “수치란 정념은 얼굴 붉힘으로 나타난다. 불명예스럽다고 느꼈을 때 생긴다. 젊은이들에게 이런 정념이 나타나면 평판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며 칭찬할 만한 일이다. 좋은 평판을 경시하는 것은 몰염치라고 한다.” 서양식이든 동양식이든 좋은 걸로 기억하십시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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