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교육’ 불지피는 실리콘 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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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변화와 관련해 가장 큰 변화가 불어닥치고 있는 것은 학교 교육 분야다. 실리콘 밸리의 샌 호제이, 샌타 클래라, 쿠퍼르티노 등 대부분의 교육구(區)
들이 수백만 달러를 투입,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하는 등 인터넷 교육 환경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많은 교육 행정가, 교사, 학부모들이 인터넷 활용이 미래 사회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으며 이같은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실리콘 밸리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학교들이 컴퓨터·소프트웨어 구입, 인터넷 전용선 설치 등 학교 전산화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많은 학교들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딜레마에 부닥치고 있다.

우선 인터넷 장비 구축에는 신경을 쓰는데 비해 정작 인터넷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에 대한 투자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 교육의 인터넷화에 대한 당위성에만 지나치게 집착, 시설 투자에만 러시를 이룬 것이다. 샌 호제이 교육청의 리처드 프라이버그 교육감은 “주정부의 지원으로 학교마다 인터넷은 다 깔려 있지만, 막상 교사들이 이를 어떻게 수업에 활용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IBM이 실시한 한 조사에도 이러한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의 초·중·고교의 89%가 인터넷 시설을 구비하고 있지만, 이중 23%만이 실제 교육과정에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교사들의 인터넷 사용 미숙과 교재 활용 연구 부족으로 수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많은 수의 교사들은 인터넷과 같은 첨단 기술을 교육 과정에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한 교육행정가는 전한다. 현재 미국 교육의 가장 큰 흐름은 인터넷을 통한 ‘원격 교육’. 점점 많은 인터넷 교육전문 회사들이 인터넷을 통한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고교 졸업장까지 수여하고 있다. 그러자 일부 교사들은 칠판을 통한 자신들의 교육방식이 점차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고, 종래에는 자신들의 자리를 인터넷에 넘겨 주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또 온라인 수업을 통해 교육내용이 일반에게 공개될 경우 수업방식이나 내용을 놓고 비판받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인터넷이 교실 교육의 ‘보완재’보다는 ‘대체재’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교원 노조 역시 이같은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 당국은 심각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빈부간에 디지털화가 차이가 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터넷 지식을 갖추지 못할 경우 그 골은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지는 것.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은 인터넷 환경에 노출돼 있는 반면,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인터넷을 배울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그 전형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실리콘 밸리 중심에 위치한 팰러 앨토(Palo Alto)
는 두 지역으로 나뉜다. 웨스트 팰러 앨토(West Palo Alto)
는 실리콘 밸리의 부자들이 모여 사는 첨단 도시인 반면, 이스트 팰러 앨토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손꼽히는 저소득층 주거지. 이스트 팰러 앨토의 학교들에도 교실까지 인터넷이 깔려 있지만 집에는 컴퓨터가 없는 이 지역 학생들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숙제를 할 방법이 없다. 가정과 학교의 학습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인터넷 활용도는 지극히 낮은 수준.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 수준이다. 팰러 앨토 교육청은 동쪽 지역과 대비되는 이러한 ‘디지털 격차’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팰러 앨토 교육위원회의 수잔 뮌젤은 이스트 팰러 앨토 지역 가정에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이같은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이 지역 학생들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는 판단에서다. 중고 컴퓨터를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아 가정에 나눠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컴퓨터의 대부분이 386급 기종이라 인터넷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오히려 짐만 되기도. 쓸모없는 구형컴퓨터를 재수거하는데 수천 달러를 쓴 경우도 있었다.

데이비드 류 <davidlew@click2schools.com>

Click2Schools.com대표이사 davidlew

필자 약력

69년 미국 보스턴生·조지타운대卒, 하버드대 한국사 석사,
하버드대 존 F.케네디 스쿨 공공정책학 석사·백악관 근무,
인터넷 컨설턴트로 활동·現 Click2Schools.com (www.click2schools.com )
대표이사

이코노미스트 제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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