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쥐랑 뺑덕어멈이 없으면 드라마가 안돼나요?"

중앙일보

입력

"이건 뭐... 젊은 콩쥐·팥쥐, 중년 콩쥐·팥쥐, 늙은 콩쥐·팥쥐... 상식을 벗어난 못된 일들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해대고... 그런 인간이 어디 있어요? 꼭 그래야 드라마가 돼나요?"

SBS 〈불꽃〉에서 주인공 지현(이영애)과 함께 미니시리즈를 기획중인 현경(장서희)가 등장 캐릭터를 수정하자는 PD의 의견에 쏟아부은 말이다. 그래도 시청률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냐는 말에 현경은 "TV를 부셔버려야지"라고 답한다.

〈불꽃〉을 집필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속내를 '현경'이라는 드라마속 캐릭터를 통해 털어놓은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한 장면이다. 더군다나 〈불꽃〉이 콩쥐-팥쥐 대결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 MBC 〈진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진실〉의 시청률이 50%를 넘는 사이 화려한 캐스팅에 '김수현'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시작한 〈불꽃〉은 겨우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형편.

대부분의 경우 한 남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콩쥐와 팥쥐의 대결은 갈수록 극단화된 인간유형을 창조하고 있다. 과거의 팥쥐들이 약은 꾀와 속 보이는 거짓말로 일관하였다면 최근 브라운관에 등장한 팥쥐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적절히 이용하는 지혜로움과 사고현장을 조작하는 대담함까지 겸비했다.

한 방송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청률을 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선악의 대비와 신분의 차이, 불륜을 꼽았다. 이러한 요소들을 제외하고 내가 보고 싶고 재미있는 내용을 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하지만 김수현은 현존하는 방송현실에서 이 희망사항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드라마 속 방송작가 지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친구가 준비하고 있던 일일드라마가 다른 작가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지현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 작가 언론에서 그렇게 두드려 맞았어도 시청률은 잘 나왔쟎아"라고.

'시청률 지상주의'... 신종 콩쥐, 팥쥐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우리는 언젠가 TV를 부셔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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