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상장종목 주가급락…자금조달 '홍역'

중앙일보

입력

증권거래소 상장 종목의 주가가 급락하자 기업들이 유상증자에 차질을 빚는 등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은 지난해 증시 상황을 토대로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하는가 하면, 추가 구조조정과 신규 사업계획을 수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로 눈길을 돌렸으나, 회사채 발행은 부채로 계산되기 때문에 지난해 말 간신히 맞춘 부채비율 2백%를 유지하기 힘들까봐 고심하고 있다.

◇ 5대그룹 이하가 더 걱정〓쌍용양회는 올해 2천억~3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했다가 거의 포기상태다.

주가가 액면가(5천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천1백75원(21일 종가)이기 때문이다. 쌍용 관계자는 "요즘같은 거래소 시장의 침체 상황에선 제조업체 주식으로는 유상증자를 하기 힘들다" 고 말했다.

동아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져 주총을 거쳐야 유상증자가 가능한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고 말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상장사 가운데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져 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상증자를 하기 어려운 곳이 지난 18일 현재 2백54개. 이에 따라 2월 들어 유상증자 규모는 2천5백억원선으로 지난해 2월(3조7천3백억원)의 6.7%수준에 그쳤다.

한국섬유산업협회 장석환 부회장은 "섬유업 등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거래소 시장에 상장돼 있는데 요즘 증시를 통한 자금줄이 사실상 막힌 상태" 라며 "증시 뿐만 아니라 은행권조차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을 낮게 매기는 바람에 대출받기 어렵다는 회원사가 많다" 고 말했다.

삼성.현대.LG.SK 등 4대 그룹도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모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부채비율 2백%를 겨우 맞춘 상태라 은행과 협의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차입하기가 어렵다" 고 말했다.

주가로 보아선 이론적으로 유상증자가 가능한 대기업들도 현재와 같은 거래소 시장 상황에서는 대량 실권(失權)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추가 구조조정 등 차질 예상〓전경련 관계자는 "워크아웃 기업 등 차입금 상환이 시급한 기업들이 증시 침체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추가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는 기업이 생기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코스닥 열풍 속에 앞으로도 직접금융 조달 여건이 개선될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는 일부 제조업체는 신규사업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특히 워크아웃 기업들은 지난해 자구계획 이행률이 34% 수준으로 올해 추가로 구조조정 계획을 이행해야 하는데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포항제철.현대중공업 등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또 건설업체 등 일부 업종은 집단 기업설명회를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기업들이 증시에서 주식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