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감세 철회” … 박재완은 “감세가 정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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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MB노믹스’의 골자인 감세정책을 둘러싸고 당정(黨政)이 ‘마이웨이(My way)’를 선언했다. 한나라당은 16일 소득세·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를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이두아 원내대변인은 이날 감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소득세·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라는 정책기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 정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도 “소득세는 물론 법인세에 대해서도 감세 철회가 사실상 당론으로 정해진 걸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의총에서 감세 철회에 대해 일부 의원들이 반대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원내지도부는 이렇게 결론을 냈다. 이는 전날 소속 의원 1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세 관련 설문조사 결과 때문이다. 98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소득세에 대해선 76명(78.4%), 법인세에 대해선 63명(65.6%)의 의원이 추가 감세 철회에 찬성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의총을 마친 뒤 “별도 최고구간 신설 문제와 조세감면제도는 당 정책위를 비롯한 지도부와 이 문제를 다룰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에게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는 권한을 위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재정부는 법인·소득세 감세와 세입기반 확충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권위 있는 기관의 권고를 정론이라고 생각한다”며 감세 기조 유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장관은 이날 언론사 경제부장 간담회에서 “소득세와 법인세가 고용에 미치는 효과 등을 감안해서 (정치권이) 국제기구의 권고를 참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도 경제수장으로서 제 목소리를 냈다. 그는 “가담항설(街談巷說·거리의 뜬소문)이나 부의(浮議·들뜬 논의)에 휘둘려선 안 되며 정론은 재정적 실현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정부 재정만으로 모든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등록금 논의가) 5000만 국민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로 전문가와 국제기구의 조언을 듣고 ‘교과서적 정론’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물러설(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은 아니며 (등록금만 보는) 부분 균형보다는 (나라 전체 경제를 감안하는) 일반 균형을 찾는 데 노력할 것”이라며 균형감각과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추가경정예산으로 9월부터 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추경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빨라도 내년 예산에나 넣을 수 있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이슈에 대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책임감 있게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에서 치고 나가고 정부가 뒷수습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나라 살림을 잘 아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안을 만들어 당과 협의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다. 박 장관이 여당의 감세 철회에 맞서 정부의 ‘곳간지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데도 이런 대통령의 질책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 좌절이 좋은 예다. 제대로 된 정책 토론 없이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이끄는 금융당국이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향을 정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에 뜻을 꺾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정책을 꾸려 나기기 힘들게 됐다”며 “그래도 표만 계산하는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에 휘둘리면 경제의 근간인 재정안정 기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경호·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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