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44개 일반약 리스트 발표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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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부가 박카스 등 일반의약품 44개(17개 회사)의 수퍼마켓 판매 허용 방침을 밝혔지만 제약회사들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6일 현재 수퍼마켓 판매 계획을 밝힌 제약사는 어느 곳도 없다. 약국에서만 팔던 일반약을 수퍼마켓에서도 팔 수 있게 의약외품으로 바꾸면 환영할 줄로 알았는데 제약사들이 시큰둥한 이유는 뭘까. 약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는 16일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회를 열어 44개 약품의 수퍼마켓 판매 허용을 강하게 성토했다. 김구 약사회장은 무기한 단식에 나섰다.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만 팔 수 있다. 소비자가 특정약을 지목해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약사가 약을 선택해 소비자에게 권한다. 제약사들은 이번에 수퍼마켓 판매가 허용된 44개 외 다른 일반약을 약국에서 팔아야 한다. 그런 마당에 섣불리 나섰다가 약국 눈 밖에 나면 매출 감소를 피할 길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사 관계자는 “경쟁회사 제품은 44개 리스트에서 빠지고 우리 제품이 들어가 좋긴 하다. 하지만 앞장서 나섰다가는 약사회에 밉보일까 걱정돼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제약회사 관계자는 “약국에 잘못 보였다가는 일반약뿐만 아니라 전문약 매출까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 44개에 포함된 우리 회사 제품의 매출 비중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광동제약의 비타민 음료 ‘비타 500’이 히트하자 동아제약이 박카스F에서 카페인을 제거한 박카스S를 출시하려 했다. 일반약이 아니라 의약외품으로 허가를 받아 수퍼마켓에서 팔려고 했으나 약사들이 반발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가하지 않아 실패한 적이 있다.

 수퍼마켓 판매 대상 44개 약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동아제약의 박카스D다. 지난해 12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 매출의 15%를 차지한다. 이 회사 김용운 과장은 “박카스D를 당분간 수퍼마켓으로 유통하지 않기로 했다”며 “박카스를 수퍼마켓에서 팔게 되면 음료와 섞이면서 50년 동안 유지돼온 ‘기능성 음료’라는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록천액을 제조하는 광동제약도 이 약품의 약국 외 판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편의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븐일레븐 최민호 홍보과장은 “약을 사러 왔다가 다른 제품을 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44개 중 박카스를 빼면 유명무실한 제품이 많다”며 “감기약·소화제·두통약 등 을 수퍼마켓에서 팔 수 있어야 매출 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박유미 기자

◆약품 분류=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 그렇지 않은 일반약, 인체 영향이 거의 없는 의약외품으로 나뉜다. 일반약은 약국에서만, 의약외품은 아무 데서나 팔 수 있다.

‘일반약 수퍼 판매’ 제약회사들의 입장

“공식 입장 정리가 안 됐다.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중.”
“정부 정책에 맞춰 움직이겠지만 언제가 될지 몰라.”
“매출이 크지 않은 제품들이라 얼마나 영향 미칠지 … .”
“이익집단 밥그릇 싸움 때문에 눈치 보는 게 사실.”
“ 약사회에 밉보일까 봐 입장을 표명하기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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