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살리자" 佛예술인 구명운동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예술인들이 폐관 위기에 몰린 한국의 한 미술관을 도우려고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 8일 자크 랑 하원 외교위원장과 작가 알랭 조프루아는 김대중 대통령과 문화관광부에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 구명 탄원서를 보냈다.

이 탄원서에는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불리는 데리다.드브레.현대미술가 아로요.보테로 등 예술인 1백여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서울미술관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한국의 예술인과 지성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유일한 공간이었다" 고 아쉬움을 표했다.

1981년 개관한 서울미술관은 2차대전 후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등 한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미술관으로선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곳. 뒤샹.만 레이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도 이 곳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민중미술 화가들의 '후원자' 를 자임하기도 했다.

초대 관장을 지낸 김윤수 영남대 교수와 오너인 임세택 관장, 전시기획실장이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주축이 돼 당시 무명이던 신학철을 발탁했고 임옥상.민정기 등을 조명했다.

서울미술관 덕분에 구기동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카페가(街) 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임옥상씨는 "서울미술관은 상업적 유혹을 뿌리치고 깊이있는 안목으로 예술을 꽃피우게 했던 곳" 이라며 "별다른 문화공간 하나 없던 동네를 '문화의 거리' 로 가꾼 공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고 평가한다.

90년대 들어 이렇다 할 활동이 뜸하던 이 곳이 결정적으로 재정난에 부닥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직후. 칠레 초현실주의 화가 겸 조각가 로베르토 마타 전을 열 무렵이었다.

15년간 사재를 털어 미술관을 꾸리면서 부족한 예산을 메우느라 대출받은 돈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까닭이다.

임관장이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곳은 프랑스 문화원과의 교섭. 문화원 측이 미술관 부지(약 7백50평) 를 구입한다는 내용의 협상은 1년 넘게 끌어오다 지난해 8월 결렬됐고, 결국 부지와 건물은 경매에 넘어갔다.

미술관 관계자는 "원래 부지가 매각되면 다른 곳으로 규모를 줄여 옮겨서라도 미술관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 측과 줄다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현재로서는 이것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IMF 한파 후 문화공간들이 재정난으로 하나둘씩 쓰러져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제 서울미술관도 이 서글픈 대열에 합류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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