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반값 등록금’ 진지한 성찰 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박태욱
대기자

5명 중 거의 4명이 ‘반값 대학 등록금’에 찬성했다. 본지와 YTN·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함께 한 여론조사 결과(본지 5월 30일자 10면)다. 재정이 허용하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하자는 의견이 58.4%로 과반수를 넘었고, 재정적자가 생기더라도 적극 추진하자는 의견도 19.9%에 이르렀다. ‘재정이 허용하는 선에서’란 말을 어떻게 해석하든, 재·보선 패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제 개편 중 던진 반값 등록금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데 대해 한나라당 임시 지도부는 기대했던 결과라며 고무적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미 ‘3+1’의 일환으로 반값 등록금을 내세워왔던 민주당이 ‘표절’이라며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덤으로 즐길 수 있겠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선 아예 ‘등록금 폐지’로 가자는 한층 가열찬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학 등록금이 관심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교육은 보편적 복지의 주요한 한 축이란 생각. 둘째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현실. 둘 다 옳은 얘기일지 모르겠다. 이른바 보편적 교육은 국가의 중요 의무며, 실제로 우리 대학 등록금 수준은 분명 높다. 지나친 부담은 보편적 교육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며, 이는 빈곤의 대물림이나 사회적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대학 등록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소득을 감안하면 더욱-많다는 건 국공립·사립을 불문하고 사실이다. 경감 방안을 찾는 건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늘 말하듯 재원일 텐데, 예산의 1% 안팎인 2조~4조원의 소요재원은 그게 정말로 최우선 목표라면 감당 못할 정도라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건 현재의 대학 등록금이 재정지출에 최우선권을 주어야 할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다. 통일 대비는 차치하고라도, 보육문제나 고령화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면 더욱 절실할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흔히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란 말을 많이 쓴다.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교육복지란 말이 있고, 일정 과정까지의 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정 과정을 어디까지 연장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재정 상황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반값 등록금 이슈가 그런 진지한 성찰을 전제로 하고 있는 걸까.

 반값 등록금 발상은 기본적으로 대학도 일종의 보편적 교육과정이란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고졸의 79%가 대학에 진학하는, 그야말로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편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는 얘기하지 않는다. 선행단계인 고등학교는 건너뛰는 논리 전도, 과연 현재의 대학 교육이 과정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걸 얘기 않고 대학 등록금 반값을 먼저 내거는 건 비판 없는 추인(追認)에 불과하다.

 98%의 학생·부모가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원하는 나라, 79% 이상이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에서 대학 진학은 거의 필요조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끌고 가는 게, 나아가 이를 바꾸기 어렵다고 세금을 들여서라도 현실을 추인하는 게 과연 사회적으로, 또 국가 미래를 위해 옳은 것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 진학 이전에 치러야 할 엄청난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가니까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대다수가 취업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산학 간의 엄청난 괴리로 졸업 후에도 미래를 담보키 어려운 현실, 이른바 학력 인플레와 이로 인한 사회적 낭비, 5년 뒤면 고교 졸업자가 대학 정원에도 못 미칠 것이란 인구변화 추이 등등,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선 등록금 반값에 앞서 고려했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대학 진학은 근본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이 사회적으로도 유용하리란 전제하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비대출제도를 확대하거나 이자를 경감하고, 국비장학생을 늘리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대부분이 가고 있다는, 반드시 재평가돼야 할 현 상황이, 대학과정을 보편적 복지 대상인 양 추인케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재정으로 우선 충당해야 할 다른 복지 수요가 너무 많고, 대학을 둘러싼 우리 현실은 상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