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시행해 보니…] 추가 고용보다 수당으로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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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주 40시간제를 도입한 S건설은 한 달에 6일은 쉬고 2일은 근무하되 수당으로 보전해 주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하지만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현장을 놀릴 수 없는 건설업체의 특성상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

이 업체 관계자는 "휴일에 불가피하게 근무하면 평일 임금의 두 배인 휴일수당을 받게 돼 있지만 일부 현장에선 근무를 했는데도 쉰 것처럼 허위 보고하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 간에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대제로 근무를 하거나 휴일에도 사업장이 돌아가야 하는 유통.건설업체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이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인력 충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휴일 확대로 평일 생산성 향상' 등 주 5일제 근무의 도입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실제로 올 1분기의 고용률은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58.5%에 그쳤다. 고용률이란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로 실질적인 고용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다.

?근로시간 단축 어려운 사업장 많아=근로자 600명 정도의 중견 기업인 J기업은 올해부터 주 40시간제를 도입해야 하지만 토요일 휴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대기업 납품업체라 라인을 마음대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토요일엔 근로자들에게 특근수당을 주고 라인을 가동할 계획이지만 인건비 증가 때문에 고민 중이다.

대형 유통업체인 N사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주 5일제를 도입했지만 인력 충원이 안 돼 노동강도가 세지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연구원 성재민 연구위원이 최근 근로자 1585명을 대상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 효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주 40시간제를 도입한 사업체 근로자 중에도 실제 근로시간이 단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1000명 이상 업체 근로자 중 토요일에 쉬는 등 근무형태가 변한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지난해 46.1시간으로 전년보다 4.6시간이 줄었다. 그러나 일요일에만 쉬는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52.2시간으로 전년(52.5시간)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계 교대제 개선 요구 거세=민주노총은 연맹별 토론회와 조사를 거쳐 7월까지 주 5일제 도입에 따른 교대제 개선을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 노동연구원이 2003년 5명 이상 사업체 상용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임금구조 통계조사를 보면 전체 노동자의 16.1%가 교대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병원, 지하철.철도.택시 등 교통업무, 자동차.화학섬유 등 가동률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업종 특성상 교대제가 불가피해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교대 형태를 바꾸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민주노총 김태연 정책국장은 "철도.지하철.보건 등의 교대제 개선에서 주요 쟁점은 인력 충원"이라며 "올 임단협에서 투쟁을 주도할 사업장과 업종을 선정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노사 협조 통해 원만히 도입한 사례도=밀폐용기를 생산하는 하나코비는 기존 2조 2교대제를 3조 2교대제로 바꾸는 중이다. 이 회사는 4일 일하고 2일 쉬고 다시 4일 야간근무하고 2일은 휴무하는 근무형태를 시범 도입했다.

휴무가 늘어나면 인건비가 더 들어가지만 대신 기존 연 280일인 가동일을 365일 풀가동으로 바꿔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교대제 개선 작업을 자문한 뉴패러다임 센터 황윤곤 팀장은 "잔업이 줄어 감소하는 임금은 기본급을 올려 보존해 줘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근로자 460여 명 규모인 A백화점은 지난해 4월부터 주 2일 휴무를 시범 실시 중이다.

한 달에 연차를 2~3일 쓰도록 하고 휴일에 근무하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부하직원이 휴일을 제대로 쉬었는지를 점검해 팀장의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평일 업무 강도는 높아졌지만 쉬는 날이 늘어나고 비정규직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직원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철근.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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