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오르자 경매취하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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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계동 주공아파트 19평형을 담보로 2개 은행에서 4천만원을 빌린 金모씨. 대출 만기인 지난해 4월까지 돈을 한 푼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그냥 날릴 처지에 이르렀다. 은행에서 빌린 돈 4천여만원에 전세 보증금 3천만원을 합치면 7천만원의 빚을 깔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전셋값이 5천만원선으로 껑충 뛰자 金씨는 만기가 된 세입자를 내보내고 빚을 갚아 경매를 취하시켰다.

요즘 전셋값이 많이 오르자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고 경매를 취하시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지역은 전셋값이 2년전보다 두배 가량 올라 조금만 보태면 은행 빚을 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건국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수도권 주택(아파트.다세대.단독)경매 취하.정지가 월 평균 6백여건에 달했으나 12월에는 8백75건으로 부쩍 늘었다.

최근 들어 전셋값 상승세가 다세대.연립.단독주택 등으로 확산되면서 이들 주택에 대한 경매 취하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전체 경매 신청건수가 감소한 가운데 다세대와 연립주택의 경매 취하 건수는 8~11월보다 1백여건이나 늘었다. 경기가 좋아져 돈 융통이 쉬워진 점도 있지만 오른 전셋값으로 빚을 갚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북부지원에서 경매가 정지된 서울 미아동 한 단독주택(대지 37평.건평 68평)의 경우 전세(4가구)보증금 7천9백만원과 9천여만원의 은행 빚(채권액은 1억2천만원)이 물려 있었다.

집주인인 朴모씨는 요즘의 전세 시세가 1억2천만원이 넘는 사실에 고무돼 채권 은행들에 빚을 일부 갚고 경매를 일단 정지시켰다.

전세 만기가 되면 올려 받든가 새로 세입자를 받을 경우 빌린 돈의 50% 정도를 상환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이런 경매 취하사례는 특히 채권액이 적은 소형 주택에서 많다. 소형 아파트의 경우 전셋값이 2천만원 정도만 올라도 금융권 차입금 갚기가 어렵지 않은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낙찰을 받았는데도 경매가 취소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강동구 고덕 주공아파트 18평형을 1억6천2백만원에 낙찰받은 金모(35)씨는 느닷없이 경매가 취하됐다는 황당한 연락을 법원으로부터 받았다.

채무자가 일단 항고를 제기해 시간을 번 뒤 그 사이 올려받은 전셋값으로 은행 빚을 갚아 경매 자체가 무효가 된 것이다.

태인컨설팅 관계자는 "부동산에 설정된 채권액이 적을수록 경매 취하가 많다" 며 "게다가 경기가 나아지면서 채무자들이 빚 갚을 여력이 많이 생긴 것도 취하 및 정지가 많아지는 한 요인"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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