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개발 의혹] 얽히고 설킨 친분·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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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개발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을 구속한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인물 가운데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유전 개발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친분과 역할을 규명하는 것이 외부 압력의 실체 등 사건의 실타래를 푸는 열쇠"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철도공사 고위 간부 간의 복잡한 친분과 역할이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후원회장인 이기명(69)씨는 13일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허문석(71)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의 조속한 귀국을 촉구하는 편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씨는 자신의 고교 동창인 허씨를 이 의원에게 소개했으며, 허씨는 감사원 조사가 진행되던 지난달 4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복잡한 친분 관계=방송작가 출신인 이기명씨는 허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6년 전쯤 자네가 귀국해 우리 사무실에 들렀을 때 자네를 이광재 의원에게 대학 선배라고 인사를 시켰는데, 이제 그때의 만남이 악연이 돼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한 에너지 전문가가 (철도청 유전 개발 사업이) 잘 풀려 대박이 터졌다면 언론은 '철도청의 발상 전환이 에너지 문제 해결에 큰 공헌을 했다'고 대서특필했을 것이고, 철도청 친구들은 영웅이 됐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세상사가 이처럼 종이 한장 차이로 운명이 바뀌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이씨는 "자네는 그래도 아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빨리 귀국해 온갖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네"라며 허씨에게 귀국을 종용했다.

검찰은 지난달 초 감사원 조사를 받고 나온 허씨가 이씨와 전화 연락한 것을 마지막으로 곧바로 해외로 출국한 점에 주목, 이씨가 어떤 형태로든 허씨의 귀국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허씨를 지난해 9월 대한광업진흥공사 박양수 사장에게, 11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소개해 준 것이 유전 사업과 연관이 있는지도 캐고 있다.

이광재 의원의 경우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과의 친분관계가 최근 드러나면서 사업 개입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자신의 혐의 사실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2003년 국정상황실 상황1팀장으로 있을 때 김 전 차관을 국정상황실장이던 이 의원에게 처음 인사시키고 이후 만남을 주선한 박남춘 청와대 인사제도 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김 전 차관과 박 비서관은 대학 동문이면서 행시 동기다.

?정부 기관 어디까지 개입했나=본지가 4월 15일자로 보도한 '러시아 유전개발 프로젝트' 문건에는 '유전 사업은 청와대 외교안보위원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향후 산자부에서 주관' '국정원.외교통상부.건교부.통일부가 비공식적으로 양해'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문건 내용은 지금까지 수사 과정에서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이희범 산자부 장관에게 유전 사업이 잘 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건의한 사실이 확인됐고, 청와대 김경식 행정관이 유전 사업에 대해 보고받은 것도 드러났다. 여기에 지난해 7월 철도청장이던 김 전 차관이 우리은행 임원에게 유전 사업 자금 대출을 요청하기 6일 전 황영기 우리은행장, 국정원 대전지부 간부와 함께 식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의 만남이 대출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황 행장과 국정원은 은행 대출과는 무관한 개인적인 만남에 동석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검찰은 국정원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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