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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감원 쇄신책은 위기모면용이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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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감독원이 자체 쇄신안을 내놓은 지 나흘 만에 내부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느낌이다. 권혁세 원장은 지난 4일 금감원을 갑자기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퇴직하는 직원이 금융회사 감사로 재취업하는 것은 물론 금융회사가 감사 추천을 요청해도 일절 거절하겠다”고 보고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드러난 온갖 불법·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산등록 대상 공무원도 2급에서 4급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감사 내정자에서 사퇴한 이석근 전 부원장보는 8일 “내가 낙하산 감사 문제의 속죄양이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덮어놓고 금감원 출신은 금융회사 감사로 가면 안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금감원 출신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인적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3월 말 신한은행 주총에서 감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전직(轉職)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심사를 보류하는 바람에 출근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금감원의 쇄신책이 발표되자 신한은행 감사직에서 자진해 물러났다. 공직자윤리위가 심사를 보류할 정도로 그는 ‘낙하산 감사’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런 그가 속죄양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발언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장이 모든 직원에 대해 금융회사 재취업을 금지할 권리는 없다. 전문성 있는 인력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도 현실을 무시한 극단적인 조치다. 그의 의견 표명에 대해 다수의 금감원 직원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금감원 직원 가운데 물을 흐린 사람은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소수로 인해 금감원은 물론 정부의 신뢰까지 추락했다. 지금은 그걸 바로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하는데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우는 듯한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다. 이석근씨의 주장에 여러 직원이 공감하고 있다면 4일 권 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금감원 쇄신책은 단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임시변통이었느냐는 것이다. 당장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통령과 국민 앞에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한 것인지 권 원장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