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맞춤'영화 보기

중앙일보

입력

전자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ㅂ씨(25세). 느지막히 일어나 컴퓨터로 회사의 지시사항을 체크한 뒤 거래처 몇 곳에 이메일을 뛰웠다.

어제 '화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컴퓨터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겸 멜로영화나 한 편 보기로 했다. 어제 옆 자리에 앉았던 여성의 얼굴이 떠 올랐다.

인터넷으로 A극장 사이트에 접속했다. 30여 개의 인터넷영화관이 있지만 단연 A극장 사이트가 뛰어났다. 등록 된 작품 수도 많을 뿐더러 수준이 높았다. ㅂ씨가 태어나던 해인 2000년엔 서울에만 1백여개의 영화관이 있었다. 지금은 10곳도 남지 않았다. 기존 영화관은 대부분 전자 영화관으로 개조됐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영화를 광선으로 변환시켜 상영하는 극장이다. 할리우드 영화도 위성으로 데이터를 받아 미국과 동시에 개봉한다.

인터넷 화면에 신용카드 번호 난이 깜빡였다. 번호를 입력하고 '오후의 연정'이라는 영화를 다운받았다. 촌스러운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ㅂ씨는 특수안경을 썼다. 17인치 화면을 50인치로 확대해주는 역할을 한다.

50평이상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40인치짜리 스크린을 걸어놓기도 하지만 21평에 사는 ㅂ씨는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영화 중간에 어제 그 여성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선택 항목에서 그녀와 닮은 주인공을 택했다. 남자 주인공도 ㅂ씨와 가장 비슷한 얼굴로 바꾼 건 물론이다.

중간중간 스토리를 어떻게 선택할 건지 물었지만 귀찮아 원래 스토리대로 두었다.

불현듯 ㅂ씨는 자신이 태어나던 날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이버 중앙'의 기사 검색 난을 클릭해 2000년1월18일자 영화기사를 보던 ㅂ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건 지금의 내 얘기잖아?" .

도움말: SF평론가 박상준씨. 인터넷영화관 '아이링크' 안현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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