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르다고 敵은 아니다” 다름을 존중한 요한 바오로 2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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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31면

세계인의 가슴속에 ‘평화의 사도’로 기억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의 시복식이 5월 1일 바티칸 현지시간 오전 10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한 지 6년 만이다.

삶과 믿음

시복식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자가 된다. 복자(福者·Blessed)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믿어져 공식적으로 신자들이 공경하는 이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중 세계 130여 개 나라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온 힘을 모아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강조했다. 방문한 지역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완화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숨겨진 평화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냈다. 그분은 특별히 종교 간 대립과 뿌리 깊은 증오를 푸는 데 많은 열정을 쏟았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의 씨앗’이 있음을 선언하고 종교 간 갈등을 줄이는 데 힘썼다. 그는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회를 방문한 첫 교황이었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땅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교황은 불교와 유교의 위대한 도덕관, 종교관을 언급하며 진실한 형제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전 세계 불교 신자들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00년에는 중동 순방길에 올라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당시 교황은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가톨릭 교회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이스라엘 방문 당시 공항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어린이 3명이 흙이 담긴 그릇을 들고 교황을 맞았다. 교황은 3개의 종교가 화합해 발전하길 기원하는 희망을 담아 각각의 흙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섰을 때 사람들은 모두 긴장하고 그의 행동에 주목했다. 그때 교황은 종이에 기도 내용을 써서 성벽 틈에 넣었고 유대교 랍비가 하는 양식대로 기도를 했다.

1984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도 김포공항 활주로에 입을 맞추고 교황은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인용해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며 한국어로 첫인사를 건넸다.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장면은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이었다. 한 스님이 염주를 선물하자 교황은 바로 그 자리에서 목에 거셨다. 그 광경을 본 많은 이들은 마음으로부터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교황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대목이었다.

타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고 세상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 적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라고 생각한 그는 항상 진실한 대화를 중시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평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일간지에도 자주 따뜻한 글을 실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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