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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수익률 급급하는 자산운용사 ‘승자의 저주’ 빠질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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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24면

주가 상승세가 힘차다. 특히 올 들어 주도주로 자리매김한 정유·화학·자동차주의 상승세는 놀라울 정도다. 이들 업종 주요 기업은 1분기 실적이 급증했다. 주가가 기업이익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주가 상승세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 고수에게 듣는다

높아진 경쟁력과 적기에 이루어진 사업다각화,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 등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업종의 시장 주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음에 약간 걸리는 것이 있다. 그동안 이들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주가에 부여되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가치) 승수 역시 만만치 않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기업에 부여되는 밸류에이션 승수는 그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성격(경기에 민감한지 둔감한지), 기업의 경쟁력(시장 내 위상 및 브랜드 인지도 등), 시장 내 경쟁 강도 등에 따라 부여된다.

이들 기업의 밸류에이션 승수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여 왔다. 그런데 최근 엄청나게 주가가 오르면서 이들 기업에 부여되는 승수 또한 상승했다. 이미 과거에 움직였던 범위의 상단에 접근해 있거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밸류에이션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용인될 정도로 기업의 내용이나 환경에 변화가 나타난 기업도 있다. 새로운 성장 분야에 적기에 투자해 경기에 민감하다는 약점을 상당 부분 탈피한 화학업종의 일부 회사가 그런 경우다.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선진 자동차회사로 매출처 다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커진 자동차 부품회사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기에 민감한 성격을 갖고 있는 순수 화학주나 정제 마진이 과거 최고치 수준에 근접하는 데도 밸류에이션을 전체 시장 수준만큼 부여받고 있는 정유주까지 밸류에이션 상향을 용인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다. 이는 지금 기록하고 있는 이익 수준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논리인데, 과거에도 특정 업종의 호황이 지속될 때면 나타나곤 했던 전형적인 재평가 논리다. 호황의 지속은 필연적으로 시차를 두고 공급 증가와 경쟁 격화를 가져 온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과거의 적정 밸류에이션 승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은 주가가 지나치게 부진하다. 위와는 정반대의 논리가 작용한 탓인데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로 가격을 제대로 전가하지 못하거나 부동산 침체의 장기화와 급증한 가계부채 등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업종은 그럴 만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생존력이 충분히 검증된 기업이 밸류에이션이 충분히 낮아졌는데도 주가가 부진한 것은 이상하다. 이렇게 된 배경은 투자자들이 투자지표로 밸류에이션보다는 이익 모멘텀(추세)을 중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소수 주도주와 나머지 대다수 주식 간의 수익률 양극화가 최근 심해졌다. 여기에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경제 여건) 외에도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경쟁 논리라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시장은 상대 수익률의 우열로 자금 모집이 판가름 난다. 강세장에서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려다 보면 주도주의 편입 비중을 경쟁자보다 늘리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주가의 상승세가 계속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기업의 펀더멘털에 미세한 변화라도 있거나 밸류에이션이 과도해지면 주가의 반전이 극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된다. 2007년 시장을 포함한 강세장의 말미에 꼭 나타났던 현상이다. 자산운용회사가 ‘자산운용자(Asset Manager)’가 아닌 ‘자산모집자(Asset Gatherer)’가 되면 투자에서 밸류에이션보다는 시세의 논리로 접근해 단기적으로 수익률 극대화에 주력하게 된다.

당장 경쟁에서의 승리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강세장에서의 선두 회사들이 나중에 항상 ‘승자의 저주’를 경험했다. 지난 10여 년간 거의 예외가 없었다. 지금의 주도주 그룹에서 밸류에이션 상향이 정당화될 만한 기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또 밸류에이션 하향이 정당화될 수 없는 기업 역시 잘 선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강신우(51) 부사장 ‘펀드매니저 1세대’로 통한다. 1988년 옛 한국투자신탁 입사 후 91년부터 펀드매니저의 길을 걸었다. 99년 현대투신 ‘바이코리아’ 펀드 신화의 주인공이다. 템플턴·PCA투신운용 등을 거쳐 2005년부터 한국투신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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