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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요직에 이공계 출신 중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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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매년 대학입시에서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는 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져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나라의 발전은 개척과 창조의 바탕인 기술력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곧 핵심적인 국가경쟁력이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여 기술의 양적.질적 수준이 저하된다면 그 만큼 우리의 장래는 어렵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한 여론조사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기술직을 택하지 않겠다'는 공대 출신 기술인(건축.토목.기계.전기.전자 분야 1년차 이상 경력자 900명 대상)의 응답이 78%에 달했다. 이들은 낮은 보수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기술직 기피 이유로 들고 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이공계 대학 출신의 취업률이 인문계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한다. 이런 이공계 기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정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의하려 한다.

이공계 출신을 정부 요직에 중용하라는 것이다. 마치 여성이나 장애인 또는 국가유공자를 일정 비율로 취업케 하고, 여성의 정치적 지위 향상을 위한 국회의원직 할당제 같이 이공계 출신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정부가 산하 기관과 공기업체에 대해 직원 채용시 이공계 출신을 5년간 계속 늘려 평균 60% 수준까지 선발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공계 채용목표제가 특정 집단의 고용차별 시정으로 적정한지, 이공계 출신이 사회적 약자인지, 역차별은 아닌지 등의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재 등용에 관한 사항은 인사권자의 판단에 속한 것으로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여성.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듯 이공계 채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젊은이가 이공계를 지망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가령 정부 장.차관의 반을 이공계 출신으로 하고, 국영기업체(정부투자기관) 사장의 반을 이공계 출신으로 임명하는 방안도 도입해봄 직하다. 그렇게 되면 민간 분야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채용이나 보직에서 이공계 출신 중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이공계 출신을 우대한다는 확실한 증표를 보여줘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현재 이공계 출신 인재들이 그렇게 많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정부 내의 O부총리, J장관, O장관을 보라. 또 기업체의 훌륭한 이공계 출신 CEO가 얼마나 많은가. 인적자원은 풍부하다. 중국의 경우 국가정책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상임위원 9명이 모두 이공계 출신인 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를 주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중심이 되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방침으로 결정하고 연차별로 계획을 세워 이공계 출신을 중용하면 당장 내년 대학입시부터 우수 학생 사이에 이공계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고급관료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사회가 그만큼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고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도 이공계 교육 내용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공계 학생에게 사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넓혀주고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는 교과목을 도입해야 한다. 기본소양 겸 CEO적 자질 함양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과감하게 채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더십론.경영학.조직이론.정책학.재정학 등의 강좌를 개설할 필요가 있다. KAIST에 테크노MBA 과정을 두고있는 것도 이공계와 인문계를 접목시키는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출신의 KAIST 원장은 이 학교를 미국 MIT처럼 경영학 등 인문학 분야를 보강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국내 대학들도 이공계 커리큘럼을 KAIST처럼 대폭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수남 건설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