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픽션〉의 감독 나가노 히로유끼/ 배우, 음악 호테이 토모야쓰

중앙일보

입력

2월 19일 개봉예정인 일본영화 〈사무라이 픽션〉의 감독 나가노 히로유끼와 배우이자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호테이 토모야스가 12일 한국을 찾았다. 호테이 토모야쓰는 이 영화에서 비정하고 승부만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사무라이 카자마쓰리 역으로 호연했으며, 과거 유명 록밴드 BOΦWY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감독인 나가노 히로유끼는 뮤직 비디오 쪽에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으며, 97년에는 미국 MTV 어워드에 〈데이 라잇(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뮤직 비디오 클립으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경력도 갖고 있다.

〈사무라이 픽션〉은 내러티브 면에서는 전통적인 사무라이 영화의 범주를 떠나지 않고 있으나, 화면의 스타일 면에서는 크게 다르다. 죽음을 붉은 빛으로 채색하여 흑백화면과 대비시킨다든가, 크레인을 이용한 카메라 이동을 통해 역동적인 느낌의 강조, 그리고 록 음악과 화면의 감정 사이에 공존하는 절묘한 호흡들이 그렇다. 거기에 일본 출판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그들도 이 영화를 전통적인 사무라이 영화와 구별짓게 한다.

현재 일반 시사회를 갖고 있는 〈사무라이 픽션〉은 일본 영화 2차 개방 이후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차 개방 이후 첫작품이었던 〈러브 레터〉가 흥행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사무라이 픽션〉 또한 일본영화의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관객들을 찾아 오고 있으며, 계속 상업적인 일본 영화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픽션〉은 98년 2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인기작이었으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감독인 나가노 히로유끼 역시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당시의 반응이 이번 극장개봉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기자들과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 당신 작품의 구상과 캐릭터에 대해서 말해 달라

구로사와 아끼라 영화를 좋아한다. 어느 날 그가 만든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다가 사무라이 영화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테마는 300년전의 에도 시대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헤이지로만 봐도 당시 장군가라는 명문집의 아들은 멍청하고, 지금도 부자집 아들은 멍청하다. 그래서 주인공을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고, 에도 시대는 현대에 대한 하나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한베이는 삶에서 누구나 선배로 삼고 따를 수 있는 사람, 카자마쓰리는 좀 강하고 멋있는 캐릭터로 만들어 보려 했다.

-(호테이 토모야쓰) 당신의 캐릭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과묵한 것에서 나오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인물이다. 항상 감정을 눌르는 인물이고,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그리고 대사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사무라이 픽션〉의 영화음악은 작품의 분위기와 아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작업했는가?

(호테이 토모야쓰) 나가노 감독이나 나나 서로 각자 작업을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내가 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샘플은 대략 80여개 정도였다.
(나가노 히로유끼) 화면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 썼다. 하지만 대로는 음악과 화면이 안 맞아 일부러 음악을 위해 재촬영을 하기도 했다. 영화를 잘 보면 음악이 등장인물의 눈짓이나 칼을 들고 뽑는 모습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려고 했고, 영화의 사운드를 입히던 10일간이 가장 즐거웠던 때였다.

-〈사무라이 픽션〉은 일본 출판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그를 차용하고 있다. 이것은 작품이 만화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나는 이 영화의 캐스팅 자체가 만화적이라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영화를 봐도 등장인물의 이미지나 캐릭터에서 그런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사무라이 픽션〉도 만화라고 생각한다.

-한베이는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인물이며, 카자마쓰리는 그 주제를 파괴하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것은 나가노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에 반해, 이중적인 모습이 아닌가?

카자마쓰리의 행동을 잘 보면 그가 평소에는 칼등으로 사람을 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절 수 없는 상황에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한베이는 아예 사람 죽이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고. 나는 이 둘을 통해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죽는 것이든 죽이는 것이든 나는 그것에 반대한다.

-(호테이 토모야쓰) 이 영화의 음악 스타일은 당신이 과거 BOΦWY에서 하던 스타일과 다르다. 이번에 영화음악을 맡으면서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영화음악이든 그냥 음악이든 중요한 것은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음악은 그런 것들을 잘 드러내고 표현했을 때만이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영화음악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잘 표현할 때만이 훌륭한 영화음악이라 할 수 있지 않는가?

-90년대의 사무라이 영화를, 그것도 흑백으로 찍은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구로자와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에도 심각한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훵키(funky)"한 요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고. 흑백으로 영화를 찍은 것은 돈 문제다. 이 작품은 300년 전이 시대배경이기 때문에, 특히 세트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잘 살릴 자신이 없었다. 흑백으로 찍으면 그게 어느 정도 커버되니까... 하지만 찍어 놓고 보니 캐릭터들도 더 멋있어졌고 핏빛 효과도 좋아 마음에 든다.

-나가노 감독은 〈사무라이 픽션〉의 머리글자를 따서 계속 "SF 시리즈"라는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다음 작품은 스테레오 퓨처(stereo future)라는 제목이다. 앞으로도 사무라이 파이터(samurai fight), 사일런트 피메일(silent female) 등 많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여하튼 다음 작품은 〈사무라이 픽션〉과 다르게 혼자 해보고 싶었던 실험적이고 작가적인 경향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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