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역사로 만든 나프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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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의 벤 브래들리 전 편집국장(왼쪽)과 밥 우드워드 대기자가 18일(현지시간) 닉슨도서관 내에 복원된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이 도서관에는 닉슨이 사용했던 가구·집기·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요바린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처드 닉슨(1913~94) 전 미국 대통령을 기념하는 닉슨 도서관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진정한 역사로 만들었다. 닉슨의 최대 오점이자 그의 정치생명을 종식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시도하면서다.

 1990년 닉슨의 고향이자 묘지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에 문을 연 이 도서관은 그동안 닉슨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따른 닉슨의 사임을 “정적에 의한 쿠데타”로 묘사했다.

 하지만 2007년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닉슨재단으로부터 도서관 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티머시 나프탈리(사진) 현 도서관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프탈리 소장은 지난달 31일 도서관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룬 상설전시관을 개관했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워터게이트와 닉슨의 사임에 관해 “권력 남용” “진실 은폐” “더러운 술책”이란 항목을 붙여 닉슨의 잘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을 임기 중 사임시킨 사건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건 후손들을 위한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18일 도서관의 공식 재개관 행사에 밥 우드워드(68) 워싱턴포스트 (WP) 대기자 와 사건 당시 WP의 편집국장이던 벤 브래들리(90)를 초청했다. 두 사람은 이날 10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감회를 밝혔다.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는 닉슨이 치른 다섯 가지 ‘전쟁’을 집약적으로 말해준 사건”이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당시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의 전쟁, 언론 및 충성심 없는 보좌진과의 전쟁, 야권과의 투쟁, 워터게이트에 대한 은폐 노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야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치적을 두고 벌인 ‘역사와의 전쟁’이 그 다섯 가지 전쟁”이라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여기에 덧붙여 그간 이 도서관에서 워터게이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여섯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자신을 초청한 일)이 워터게이트의 마지막 장(章)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충형 기자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 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사건. 닉슨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 보도로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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