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삼성·LG 냉장고 ‘덤핑판매’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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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정부가 삼성과 LG가 덤핑 판매를 하고 부당 보조금을 받은 혐의가 있다며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가전제품에 대한 제소를 받아들여 조사 하는 것은 1986년 컬러TV 브라운관 사건 이후 처음이다.

 21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냉장고를 미국 시장에서 덤핑 판매했고 부당한 보조금을 받았는지를 가리기 위한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제소에 따른 것이다. 월풀이 제소한 제품은 냉동고가 아래쪽에 있는 하단 냉동고형으로 미국 시장에서도 고급형으로 분류된다. 이 시장에서 지난해 점유율은 한국 제품이 58.7%인 반면 월풀은 8.4%에 그쳤다.

 월풀은 삼성과 LG가 미국 시장에서 34~62%(멕시코 공장 제품은 27~183%) 덤핑 판매를 했다며 지난달 미 상무부에 두 회사를 제소했다. 월풀은 두 회사가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과 지자체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에 따른 연구개발(R&D) 지원 역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4월 말 한국 정부에 질의서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 조사활동을 시작한다. 최종 판정은 9월쯤 내려질 전망이다. 여기서 월풀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덤핑률에 상응하는 반덤핑 관세나 보조금에 대응하는 상계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상계관세와 관련한 월풀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경우 각종 산업육성정책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1일 이 소식이 전해지자 즉시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와 해당 기업,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 관계자로 이뤄진 대책팀(TF)를 만들었다. 이들은 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조석 지경부 성장동력실장은 “반덤핑 문제는 가격 정책인 만큼 업체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하지만 우리 정부의 산업육성책이 부당 보조금으로 인정돼 상계관세가 부과될 경우 제소가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신중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이 미국에서 보조금 문제로 제소된 경우는 15차례 있었다. 특히 2002년 하이닉스는 상계관세 판정을 받아 2009년까지 고율의 관세를 물었다. 하지만 가전제품에 대해 상계관세 부과 요구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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