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수법 판치는 보이스피싱 … 30~40대, 축산농가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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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지난해 말, 경북 안동의 한 축산농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매몰 처분된 가축을 보상해 주겠으니 주민등록번호와 은행 계좌번호·비밀번호, 연락처 등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전화금융사기)을 위해 구제역을 이용하는 수법이었다. 지난 2월엔 전남 강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축산농가에 위로금이 지급된다며 계좌번호·주민등록번호 등을 요구한 것이다. 구제역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를 노린 전화사기였다. 경찰은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보상금이 지급된 전남과 경북·충남 등에서 이 같은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진화하고 있다. 우체국·택배 사칭에서 자녀납치 협박, 구제역·AI보상금 등 신종 사기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전화사기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남지방경찰청이 지난해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사건 77건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피해자 3명 중 1명은 30∼40대로 나타났다. 공무원도 9%나 됐다. <그래픽 참조>

경찰은 범죄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젊은 층과 전문직으로까지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전남에서 전화금융 사기 사건이 처음 발생한 건 2006년이었다. 2008년 273건(31억1000만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009년 131건(17억원)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범죄수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10건 중 1건 꼴로 발생한 자녀납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리 확보한 자녀의 휴대전화에 욕설을 하거나 계속 전화해 전원을 끄게 한 뒤 실제 납치된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가장 자주 쓰는 수법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속여 돈을 빼돌리는 거였다. 주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했다. 피해자 3명 중 1명은 농민이었으며 60대 이상도 20%를 넘었다. 노인층과 농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남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경찰은 수사·금융기관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을 경우 반드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국가·금융기관, 통신사 등은 전화로 개인정보를 묻지 않으며, 수사기관이 전화로 금융정보를 파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현식 전남경찰청 수사2계장은 “보이스피싱은 한번만 성공해도 수백만원을 쉽게 챙길 수 있어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인터넷과 카드 전표 등을 통해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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