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어떻게 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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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외환위기 이후 2년간의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일들을 하나씩 현실로 옮겨온 과정' 이었다.

첫 수술의 대상은 금융기관. IMF사태의 시발점이 단기로 빌려온 달러를 장기로 대출해줬다 외화부도 상태에 빠진 종합금융사의 파산이었기 때문이었다.

98년 2월 14개 종금사가 문을 닫은 것을 신호탄으로 30개의 종금사가 2년사이 11개로 줄었다. 은행도 망한다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 동화 등 5개 은행이 간판을 내렸다.

또 국내에선 불가능하다던 대형 시중은행간 합병도 일어났다. 뒤이어 증권사. 보험사.금고.신협 등이 줄줄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렇게 정리된 금융기관이 2년 사이 무려 3백9개에 달했다. 그만큼 실업자도 쏟아져 나왔다.

금융기관에 대한 수술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98년 하반기부터는 기업에 대한 수술이 본격화됐다. 98년 6월 55개 부실기업이 시범 케이스로 퇴출대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는 5대 그룹 계열사도 20개나 끼어 있었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구조조정의 백미(白眉)는 역시 5대 그룹이었다. 96년부터 정부가 추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던 계열사간 지급보증 고리가 단 1년반만에 완전히 끊어졌다.

국내기업이 살자면 이것만은 안된다던 결합재무제표도 내년부터 나오게 된다. 계열사간의 내부거래도 엄격하게 규제돼 더이상 선단식 경영방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7개 업종 빅딜도 결국 성사됐다. 당초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부채비율 2백% 목표도 무난히 달성했다.

구조조정의 대미는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으로 장식했다. 이로써 대마불사(大馬不死)란 신화가 완전히 깨졌다.

97년 한국경제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던 기아그룹의 부도. 그 폭발력의 10배에 달하는 대우그룹 도산이 현실로 닥쳤지만 이를 거뜬히 버텨낸 것 자체가 그동안 한국경제의 체질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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