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냐 反독점이냐 …정부, 정책 모순 덫에 걸려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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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섰지만 부작용은 이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대가를 최소화하면서 시장경쟁 체제로 전환시켜나갈 수 있는 능력과 방안을 갖고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특히 기업결합.외자유치 등 정부가 내세우는 구조조정 성과들이 남긴 독과점 심화.환율정책 혼선 등 부작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다.

◇ 구조조정의 명암〓2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신고서를 접수, 심사에 들어갔다.

SK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면 시장 점유율이 57%로 뛰어올라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하나의 공룡업체와 3개의 군소업체가 경쟁하는 독과점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롯데와 일본 히카리인쇄 컨소시엄의 해태음료 인수 건을 접수해 심사하고 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롯데 관련사들의 국내 음료시장 점유율은 60%대에 달하게 된다.

이와 관련, 강대형(姜大衡)공정위 독점국장은 "구조조정의 효율성과 독과점의 폐해중 어느 쪽이 큰지를 따져 허용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외자유치도 명암이 있다. 정부는 올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목표 1백50억달러를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외환시장에선 외국인들의 증권투자자금.무역흑자까지 합쳐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 때문에 환율방어에 애를 먹고 있다.

실제로 4분기들어 원화의 대미(對美) 달러환율은 달러당 1천2백원선에서 최고 1천1백26원(12월 8일)까지 두달만에 8% 안팎 절상되면서 그만큼 한국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렸다.

◇ 정부주도엔 한계〓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방향과 잣대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부주도보다 시장개방과 경쟁체제의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신광식(申光湜)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을 잘해도 독과점체제를 심화시킨다면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동시에 국내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좀먹게 된다" 며 "공정위는 최근 미국이 마이크로 소프트를 독과점 업체로 지목해 기업분할 명령을 예고한 점을 주목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김종민(金鍾敏)국민대교수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통신산업 등에서 대규모 합병이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면서 "그러나 이 경우 과감한 시장개방으로 독과점의 폐해를 차단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편 최공필(崔公弼)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주도의 외자유치 정책과 관련, "정부가 목표 채우기에 앞장서는 것은 문제며, 기업들이 창의성을 갖고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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