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보금자리 규제 강화에 숨은 뜻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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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기자]

연봉 8000만원의 대기업 부장 김모씨. 4인 가구 도시근로자 소득(지난해 월평균 450만원)을 훨씬 넘는 소득이다. 40대 후반으로 자녀 둘을 두고 있는 김씨는 집이 없다. 줄곧 전세로 살아왔다.

김씨와 경제적 사정이 비슷한 주변 지인들 대부분 집을 갖고 있다. 김씨도 집을 장만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녀들도 커 가고 셋집살이가 불안정해 2008년 내집 마련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 방침을 보고 주택 구입 계획을 미뤘다. 기존 집값보다 훨씬 저렴하다기에 군침이 돈 것이다.

김씨는 결혼하기 전 얼떨결에 가입해둔 청약저축 통장을 20년째 갖고 있다. 납입액이 2000만원이 넘는다. 청약저축액이 워낙 많고 무주택 기간이 길어 웬만한 보금자리주택 당첨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김씨는 집을 갖게 되면 유주택자가 돼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전세로 살고 있다. 요즘 김씨는 강남 보금자리주택 입주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난번 강남권 보금자리주택 분양에 당첨된 것이다.

김씨에게 집을 사라고 강요할 순 없다. 집 구입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고 재산권 행사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시장에서 김씨 같은 사람만 있다면 주택시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 전체에서 ‘only 저축’이 미덕이 아니듯.

적당한 소비가 경제의 활력이 되듯 주택시장에서도 적당한 소비가 윤활유가 된다. 없는 사람에게 소비를 기대할 순 없지만 김씨처럼 웬만큼 있는 사람은 집을 사는 게 주택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한다.

가계에 부담스럽지 않는 범위에서 김씨의 구입가능주택은 6억원 선으로 평가된다. 김씨가 이런 주택을 마다하고 싸고, 그래서 상당한 시세차익을 낼 수 있는 4억원 정도의 보금자리주택에 매달린다면 주택시장의 다른 분야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싸고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보금자리주택에만 주택수요자들이 몰리면 이런 수요는 전세 가수요를 낳는다. 요즘 전세난의 주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자신보다 소득이 훨씬 낮은 소비자들의 시장 경쟁을 치열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건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적당한 주택 소비가 주택시장 활력 줘

정부가 잇따라 보금자리주택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은 이런 과잉수요, 수요거품을 줄이기 위해서다.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한 1단계로 정부는 소득은 많은데 운 좋게(?) 무주택 기간이 길고 청약저축액이 많은 사람들을 보금자리주택 시장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소득 기준을 설정키로 했다.

자격은 되더라도 `여유` 있는 사람은 보금자리주택에서 배제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보금자리지구 내 중소형 민간 주택도 무주택 세대주에게 전량 우선공급하기로 했다. 보금자리지구의 땅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보금자리지구 내 중소형 민간 주택은 보금자리주택이 아니어도 그에 못지 않게 싸게 나온다.


택지공급 가격이 조성원가의 120%로 보금자리주택 용지 가격(조성원가의 110%)보다 조금 비쌀 뿐이고 건축비는 비슷하다. 분양가 총액으로 본다면 보금자리주택보다 5% 가량 더 비싸게 된다.

때문에 보금자리지구 내 중소형 민간주택은 보금자리주택이 아니어도 상당한 대기수요를 줄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보금자리지구 내 중소형 민간 주택은 앞으로 청약가점제 100% 적용을 받게 된다. 지금(75%)보다 가점제가 확대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무주택자에게만 당첨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무주택자 청약에서 미달되면 유주택자도 청약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유주택자이면서 보금자리주택 당첨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대가 꺾이는 것이다.

가점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무주택 기간과 통장 가입기간도 길어야 한다. 민간주택엔 소득 제한이 설정될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보금자리주택이든 보금자리지구 내 민간 중소형이든 보금자리 주택 수요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일련의 보금자리지구 문턱 높이기가 바로 전세난을 진정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보금자리 정책이 부채질한 전세 수요는 조금이나마 빠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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