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맘바'의 가솔 길들이기

미주중앙

입력

LA 레이커스 수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3일 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서 열린 터키항공 갈라 나이트에서 터키 전통악기인 탬부어를 치고 있다. 코비는 이날 팬들의 환호에 "반드시 스리피트를 한 뒤 터키로 여행가겠다"고 말했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원용석 기자

"내가 다득점을 올리지 못한 경기에서의 승리는 무의미하다."

마이클 조던이 전성기 시절 했던 발언이다. 물론 이기적인 코멘트다. 하지만 이 말에서 그의 스타기질도 십분 느낄 수 있다.

게임의 승패보다는 자신의 코트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농구철학이 없었다면 그가 '농구황제'의 자리에 올라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던을 영웅시하며 자란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듯 하다. 2000년대 초반 샤킬 오닐과 불화를 일으킨 것도 결국 '넘버원' 자리에 대한 밥그릇 싸움이었다.

필 잭슨 감독은 과거 코비에 대한 고교시절 일화를 본의 아니게 공개했다. 코비가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로워 메리언 고교 시절 전반에는 설렁설렁 뛰다 후반들어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대량득점을 쏟아부어 역전승을 이끌곤 했다는 것이다.

잭슨은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한 말이었다고 수습하고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잭슨과 코비의 불화가 본격화됐다.

2004년 NBA 파이널에서도 코비는 파이널 MVP를 결코 오닐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제스추어를 취했다. 그는 볼을 잡기가 무섭게 슛을 날렸다.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도박사들의 전망과 달리 레이커스는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졸전 끝에 결승 시리즈를 1승4패로 내주는 '대이변'을 당했다. 물론 패배의 주범은 코비였다.

지난 달 LA서 펼쳐진 올스타전에서도 그의 이러한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아마리 스타더마이어는 코비의 플레이를 두고 "공을 잡는 순간부터 MVP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패스할 생각은 전혀 안한 것 같더라. 그게 원래 코비"라고 말했다.

올 시즌 초반에도 파우 가솔이 느닷없이 MVP 후보로 등극하자 코비의 슛 횟수가 폭등했다. 가솔이 볼을 잡는 횟수는 물론 급감했다. 그의 슛난사가 다시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지만 코비로서는 가솔의 MVP 얘기보다는 듣기 편했던 모양이다.

레이커스가 연패에 빠졌을 때 가솔은 라커룸 인터뷰서 "인사이드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며 코비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는데 이 때부터 코비와 가솔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몇 몇 스테이플스센터 출입기자들은 기자에게 "둘 사이가 아주 안 좋은 상태다. 라커룸에선 서로 얘기도 안한다"고 귀띔했다.

평소 가장 인터뷰를 잘해주기로 소문난 가솔이 한동안 단답형이나 노 코멘트로 일관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면서.

가솔의 플레이도 자연스레 위축됐고 그에 대한 MVP 얘기도 수그러들자 그제서야 코비는 가솔에게 "백조처럼 농구하지 말고 흑조처럼 악랄하게 농구하라"는 등 적반하장식 주문을 했다.

코비와 한팀에서 뛰는 한 가솔도 MVP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할 것 같다. 코비처럼 쿠데타를 일으킬 게 아니라면.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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