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하지만 사퇴 안 해” … 원세훈, 국회 정보위 출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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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국정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잠입 사건과 관련된 의혹이 집중 논의됐다. [김형수 기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4일 국정원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과 관련해 “정보 총괄기관으로서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다. 그러나 원 원장은 정보위원들이 “사건을 인정하는 것이냐”고 묻자 “인정은 아니다”라며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민주당 위원들이 원 원장에게 "사퇴를 표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지자 "(사의 표명은) 사실을 인정하는 게 돼 곤란하다”고 끝까지 맞섰다.

 회의에선 원 원장이 “이 사건을 알게 된 게 2월 17일 오전 11시”라고 밝힘에 따라 ‘보고 누락’ 의혹도 제기됐다.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들어간 건 2월 16일 오전 9시27분이라 사건 발생 하루 뒤에야 안 것이다. 이를 놓고 일부 민주당 정보위원은 “(이번 사건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보안단(3차장 산하)의 관련 국장 등이 이른바 ‘영포(영덕·포항) 라인’”이라며 “이들 특정 라인이 무기 수출의 공을 세우기 위해 사전에 (TK 출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원 원장이나 김 3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일을 벌인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한 정보위원은 “산업보안단이 아닌 경찰청이나 국정원 2차장 산하 조직이 상황을 파악, 2차장이 원 원장에게 17일 오전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서 원 원장은 북한 상황과 관련, “김정일과 김정은이 현장을 함께 방문하는데, 북한은 이를 김정은이 혼자 시찰한 것처럼 편집해 발표하는 등 우상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지난해 9월 노동당 규약을 개정, (노동당을) ‘김일성당화(黨化)하는 계승성의 보장’이란 조항을 넣어 3대 세습체제를 뒷받침하려 했다”고도 했다. 원 원장은 “북한은 중동의 민주화 소식이 내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보도매체 결의문을 통해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며 “외부 정보가 유통돼 주민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속도 강화하고 국경을 통한 정보도 차단하려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관련, “중국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 북한에도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회의 도중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원 원장에게 "인정하는게 좋지 않냐"며 이번 사건에 대한 시인을 거듭 요구하자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그만하세요”라고 제지하며 설전이 벌어졌다. 박 원내대표가 이 의원에게 “어딜 끼어들어요”라고 고함치자, 이 의원은 “애 떨어지겠어요”라고 응수했고, 박 원내대표는 다시 “애 밸 나이는 지났잖아요”라고 받아쳤다. 이 의원은 “내가 불임이냐. 성희롱 발언이다”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글=채병건·허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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