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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과 야당 대표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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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영수회담’이든 ‘청와대 회동’이든, 이름 붙이는 것은 또 뭐가 중요한가.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장에서 “한번 봐야죠”라는 말로 회담을 제안한 것이 형식적으로 맞는지 안 맞는지, 그런 것들이 회동의 성사를 좌우할 만한 사안인가. 회담을 둘러싼 청와대와 민주당의 공방을 보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나라 안팎으로 난제가 산적해 있다. 구제역 후유증이 일파만파(一波萬波) 확산일로에 있다. 전세 파동에 물가 불안까지 민생이 위태롭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중동 민주화 바람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현지 진출 업체들이 위기에 처했다. 북한의 위협은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장 서 난제를 헤쳐가야 할 정치권은 지엽말단(枝葉末端) 이해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리더십을 보여줄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30개월이 지나도록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양쪽 모두 만남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가는 말을 보면 진심으로 만날 생각이 있는지, 국내외 난국을 함께 헤쳐갈 의지가 있는지, 진심으로 국민을 생각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난 2월 임시국회 개원을 앞두고 회담이 열릴 것이란 얘기가 있었지만 흐지부지 됐다. 개원이 먼저냐, 회담이 먼저냐, 대통령 사과가 먼저냐 등등 설전을 벌이다 정작 회담 자체는 외면당했다. 그러다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이 손학규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했고, 손 대표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손 대표가 지난 2월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왔다. 지난 연말 예산처리 과정에서의 날치기를 사과하라는 것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제1 야당 대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대통령의 회담 제안 형식에 불쾌감을 보였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도 “누가 예의가 없는 거냐” “회동을 정략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며 반발했다.

 손 대표는 과연 대통령의 사과가 만남을 무산시킬 정도로 중요한 조건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손 대표가 말하는 날치기는 예산안을 법에 정한 시한 내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법정시한을 넘기는 예산안 처리는 여의도의 고질병이었다. 예산 통과시한을 법으로 정한 것은 행정부의 새해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충분한 예산심의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제도를 바꾸면 된다.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화하거나 활동 일정을 앞당기는 등 국회 운영 절차를 여야가 합의해 바꾸면 된다. 국회 차원에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이를 다시 회담의 전제로 삼는 것은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국을 이끌어가는 이니셔티브를 쥔 사람은 대통령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설득리더십의 요체는 야당 정치인과의 부단한 소통이다. 영수회담은 야당 대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치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