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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CEO 정년은 7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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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16세기 일본을 평정한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평소 이런 노래를 즐겨 불렀다 한다.

 “인생 50년. 천하만물에 비하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한번 생(生)을 얻어 멸(滅)하지 않는 자 어디 있겠는가.”

 짧지만 화끈하게 살겠다는 무사의 심경으로 비친다. 요즘처럼 고령화 시대엔 인생 50년이 아니라 70년 또는 80년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각 분야에서 노련한 감각, 축적된 지혜를 토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 많다. 1930년대에 출생해 80대를 바라보면서도 60대처럼 활동하는 분들, 길고 굵게 사는 ‘신386’이라고도 한다. 후학들에겐 더없는 모범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이런 추세와는 거꾸로 금융사 경영진에 나이 제한을 두자는 주장이 나오는 게 말이다. 지난주 마무리된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회장 인선에서도 나이 문제가 나왔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은 등기이사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70~80대에도 경영일선에서 정력적으로 활약하는 원로가 많다. 대부분 오너들이다. 그래서 나이와 정년이 문제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금융인들은 불만일 수 있다. 재계 원로들에겐 존경을 표시하면서, 왜 금융 CEO들은 나이 가지고 들들 볶나. 누가 하면 노익장이고, 누가 하면 노욕인가. 사실 고령화 시대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맞는지도 의문이다.

 외국에서도 정답은 없다. CEO 연령제한을 두는 곳도, 안 두는 곳도 있다. 어느 쪽이 잘되고, 어느 쪽이 못된다는 법은 없다. 초우량기업인 독일의 보쉬를 보자. 1886년 창업 이래 지금까지 CEO가 딱 6명이다. 평균 재임기간이 20년을 넘는다. 프란츠 페렌바흐(61) 현 회장은 2003년 취임했다. 그가 평균을 채운다면 74세까지 회장을 맡게 된다.

 국내 금융계에서 연령 제한론이 퍼진 데는 신한금융의 내분 탓이 크다. ‘라응찬 효과’라고나 할까. 금융계에선 주인도 아닌 라 전 회장이 무리하게 4연임을 한 게 화근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CEO의 무리한 장기집권을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거다. 이게 다른 금융사 CEO들에게 무언의 압력이 돼버렸다. 이에 하나금융이 먼저 나서서 ‘우린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다른 금융사에도 영향을 줄 듯하다.

 그러나 양면적이다. 70세를 넘으면 못한다는 것, 뒤집으면 70세까지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 제한이 아니라 정년 보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70세가 안 됐기 때문에 계속 연임해도 된다’는 분위기로 흐를 소지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한 금융인들의 처신, 앞으로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이에 비해 실무 레벨의 월급쟁이들, 나이 50이면 모가지가 간당간당한다. 그런데 톱이 70대일 경우 위아래의 나이차가 너무 커진다. 가치관이나 사고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금융업에선 적잖은 핸디캡이다.

 방법은 딱 하나, 톱의 ‘아름다운 퇴장’이다. 일본의 저명한 경영학자 이타미 히로유키(伊丹敬之) 교수는 이를 이렇게 규정한다. ‘믿음직한 후계자가 있는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물러나는 것’이라고. 조금 이르다 싶을 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절정에서 내려오겠다고 생각하면 타이밍 찾기가 어렵다. 대신 물러나는 시점을 곧 절정으로 삼겠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신한의 라 전 회장도 여기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타미 교수는 또 경영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3대 요소로 나이·성공·집착을 꼽는다. 고령으로 심신이 약해지는 것, 자신의 성공신화에 함몰되는 것, 자리나 권력에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셋째가 가장 추해 보이는 법이다. 신한 사태도 이에 해당한다.

 원래 ‘권세 權’자엔 ‘임시적’ ‘잠시’라는 뜻도 있다. 권력은 한시적이라는 뜻 아닐까. 비단 금융회사뿐이겠나. 어디서나 높은 자리에 오르신 분들, 잘 새겨둘 일이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