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3년 지났으니 내리막길? … 난 평지를 뛰어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상춘 산행에 나섰다. 이 대통령이 북악산 정상 부근에서 만난 시민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청와대 경내에서 뒤편의 북악산 백악마루까진 2.6㎞다. 길지 않은 산길 치곤 오르막 내리막이 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오전 출입기자들과 그 길을 걸었다. 25일 취임 3주년을 맞아서 다. 재임 중 이 대통령이 기자들과 산에 오른 건 처음이다. 그는 등산로 초입에서 “지금부터 고난의 길”이라며 “지금 내려가는 길이니까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만 있는 줄 아는데 또 오르막길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상 인근에 다다랐을 때 그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면 지지율 생각이 안 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난 그렇게 정치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하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하지, 그런 걸 목표로 하면 포퓰리즘에 빠지고 일을 못한다”고 했다.

 이후 그는 직접 ‘오르막 내리막’을 언급했다. 청와대 충정관 내 경호원식당에서 기자들과 설렁탕을 함께하면서다. 그는 “사람들은 3년이 지났으니,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온다고 표현하더라”며 “그건 권력적 측면에서 세상을 보는 거다. 나는 (임기를 채우는 건 등산이 아니라) 평지의 릴레이라고 생각한다. 평지를 내가 5㎞를, 5년간 뛰고 나면 그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주는데 다음 사람이 우수하면 속도를 내서 결국 우승도 하는 그런 개념”이라고 했다. 후반기 권력은 흔히 ‘하산길’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 권력이란 평평한 땅에서 뛰는 ‘계주’ 같은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레임덕을 부정해온 건 그런 생각 때문이었던 듯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가가 오르니까 원자재 투기를 한다는데.

 “에너지와 곡물에서 투기를 없애자고 서울 주요 20개국(G20)에서 논의했다. 투기자금이 움직이는 면세지역을 없애자는 것이다. (올해 말 ) 프랑스 회의에서 초보 합의는 이뤄질 것이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에 대한 여론이 좋다.

 “(석해균) 선장이 벌떡 일어나면 좋은데…. 그러면 작전이 끝나는 거다.”

 그는 자신의 체력과 관련, “언제까지 테니스를 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어제는 18세 대표선수 유망주와 쳤는데 인정사정 안 봐주더라. 그게 G20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오찬장에서 이 대통령은 “2년 남았으면 아직도 몇 년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아이고, 이런 나라 대통령이 뭐 해먹기 힘들다’ 나는 이런 생각이 전혀 없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게 아주 자랑스럽다”고 했다.

-3년간 많은 일이 있었는데 보람차거나 아쉬움이 남는 일은.

 “ 물러날 때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전 선글라스를 끼고 실내에 들어갔는데 실내가 어둡더라. 뻘건 안경을 끼면 세상이 좀 불그스름하게 보이고 밝은 안경을 끼면 이렇게…. 각자의 안경을 벗으면 우리가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으로서 개헌발의권을 행사할 의향은.

 “ 등산 갔다 와서 딱딱한 질문을 하는 게 분위기에 안 맞는 거 같다.(웃음) 다음에 정장하고 넥타이 매고 답변하기로 약속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외에 김정은도 나오나.

 “질문이 너무 나갔다.(웃음) 어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는 강력하게 대응을 하고, 또 한편으로 남북이 정말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투 트랙의 길을 국민이 바라고 있을 거다. 금년이 북한도 변화를 가져와야 될 좋은 시기다. 모 국가 정상이 (지난해 내게) ‘김정은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더라. 본 나이는 26살일 거라고 했더니 ‘나는 육사를 1등으로 나오고 별을 따는 데 수십 년 걸렸는데 어떻게 26살이 하룻밤 자고 대장이 됐느냐’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북한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게 결코 우리에게 좋다고 생각 안 한다.”

글=고정애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