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 그거 돈 되는 겁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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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30면

융합연구기관 소속의 유일한 인문학자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강연 요청을 많이 받는다. 강연장에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곳에 모여 지지고 볶는 환경, 망하게 하는 리더십과 성공을 부르는 리더십, ‘싼티’ 나는 융합과 명품 융합의 갈림길, 경계 허물기에 대한 공포감 등을 소개하곤 한다. 또 필자가 관여하는 게임이 왜 인문·기술 융합의 대표 사례인지 소개한다. 그러면 청중은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쳐주는 편이다.

그런데 필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가시 같은 반응도 있었다. “다 좋은데, 그거 돈 되나?” 어느 대기업 계열사 CEO의 질문이었다.

평소 이런 유의 질문, 예컨대 ‘인문학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이냐’는 질문은 엔지니어와 공대 교수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지라 그냥 웃어 넘길 만큼 면역이 돼 있다고 자부해왔다. 상대방이 맹목적 기술지상주의자일 경우 “그럼 갓난아기는 무슨 용도로 쓰나요?” 혹은 “사모님은 어디에 쓰시나요?”라고 반문하면 억지 논란은 대부분 거기서 멈춘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굴지의 기업 대표인 데다 첨단업체 수장의 아우라는 남다른 것이어서 필자가 소홀히 하는 빈 곳을 찔린 느낌이 들어서였다.

흔히 융합 연구의 성공은 올바른 문제 정의에 달려 있다고 한다. 융합의 정확한 의미 설정은 귀신도 피곤해할 일이지만, 잘 설정된 문제야말로 연구의 절반을 성취한 것과 같다. 융합기술이라는 패러다임은 개별 과학이나 기술로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가 경계를 허물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태동한 것이어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계 허물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융합의 요체가 기술이나 학문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문화이기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어려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융합기술원 연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셋은 ‘융합’ ‘소통’ ‘스마트’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과 같은 열정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융합과 관련해 막상 그렇게 하기로 해놓고 못 뛰게 막거나 뛰어내린 자만 바보 되는 체험을 곧잘 겪는다. 그럼에도 한번 뛰어내린 사람은 계속 그 길을 간다. 되돌아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길이 유일하게 비전 있는 길이라는 확신과 동지의식 때문이다. 연구비 지원을 받든 말든 직급이 어떻든 계급장 떼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함께 찾자는 연구 파트너를 만나는 것보다 융합 연구자로서 더 큰 쾌감은 없다. 게다가 여러 분야의 시비를 거쳐 존재 이유를 확보한 과학기술, 즉 철학의 날개를 단 과학기술의 힘은 점점 강해져 계속 뛰어내리는 게 정답일 수밖에.

이즈음에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답해보자. 인문학은 어디에 쓰는가? 기술로써 극복 가능한 인간조건을 찾아내고 기술의 활용방안을 지혜롭게 설계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것이 돈 되는 일인가? 이에 대해서는 융합기술산업의 글로벌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가 이미 답변해준 바 있다. “소크라테스와 반나절만이라도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내가 일군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 시대의 보편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수 배울 수만 있다면 언제든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잡스의 의지가 통쾌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로 멋지다.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혜에 대한 사랑의 행위’이고, 그 시작점은 나와 타자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데 있다. 그러기에, 경계 허물기에 성공한다면 융합기술이 목표로 하는 큰 그림의 돈 잘 버는 트랙에 벌써 들어선 셈이다.



여명숙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가상현실의 존재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지언어정보연구소와 KAIST에서도 일했다. 현재 바이오게임, 뇌파를 이용한 기능성 게임 개발 책임을 맡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디지털인문학을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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