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찾아서] 명품 중의 명품은 ‘잘 노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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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이웨이
윤광준 지음
그책, 251쪽
1만3800원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민병일 지음
아우라, 240쪽
1만2500원

시인 민병일이 쓴 산문집 『나의 고릿적…』은 ‘사진가 글쟁이’로 유명한 윤광준이 몇 해 전 펴낸 『생활명품』을 연상시킨다. 구리 잉크병과 펜촉, 무쇠 촛대·다리미, 철제 연장통, 때 묻은 LP자켓 등 오래 된 사물이 줄줄이 등장한다. 모두 저자의 ‘고물딱지’ 콜렉션이다. 이런 앤티크에 담겨있는 온기를 보듬으며 디자인·미술·음악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냈는데 문장은 격조있고 사진 도판은 고급스럽다.

 옛 물건 중 국내산은 거의 없으나 정감이 가기는 매한가지다. 모든 물건을 저자가 유학했던 독일 함부르크의 주말 벼룩시장에서 한두 점씩 사 모았다는데, 확실히 요즘 공산품과 다른 그 무엇이 있다. “무심한 마음으로 보면 그것들은 잡동사니나 고물에 불과하고 현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터이다…오래 된 사물들은 나에게 비루한 현실을 넘어서는 예술의 오브제로 다가왔다.”(머리말)

 책제목에 나오는 몽블랑 만년필도 벼룩시장에서 구했다. 고풍스럽게 은입사(銀入絲)처리된 이 물건의 펜촉을 교환하러 몽블랑 본사에 가봤더니 그곳 직원조차 신기해 하더란다. 그런데 명품이란 게 뭐지? 왜 우리 마음을 움직일까?

 함께 나온 책 『마이 웨이』의 저자 윤광준은 ‘원조 명품론자’인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들어있다. 명품은 “쓸쓸한 세상에 맞서는 작은 항거”로 “인간의 아바타”(97쪽)란 것이다. 헷갈리지 마시라. 윤광준의 신작은 또 하나의 명품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명품인생론이자 행복론이다. 물건 이야기에서 삶 이야기로 그가 냉큼 진화한 것이다. 아니 그의 진면목이 본래 이 쪽이다. 한국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몇 명을 꼽자면 그를 뺄 수 없다. 전에 썼던 오디오 이야기 『소리의 황홀』, 사진 이야기 『잘 찍은 사진 한 장』 등에 엿보이던 ‘삶과 놀이의 일치’ 철학에 그간의 삶을 섞어 명품인생론을 완성한 것이다.

 “좋아할 대상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소연할 세상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그건 놀이를 몰입의 단계까지 끌고 가지 못한 탓이다. “재미에 빠져 물불을 못 가리는 상태”(212쪽) 즉 맹목의 지경까지 가라는 응원이다. 그렇다고 감 놔라 뭐 놔라하는 훈수는 아니다. 본래 베짱이 형의 인간인 자기 삶을 슬쩍 드러내는 방식으로 ‘꽃중년’을 꿈꾸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본 것뿐이다. 눈여겨 볼 점은 책에 스며든 철학적 관조다. 일테면 죽음 이야기가 설득력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상 죽음과 정면 승부했던 이는 이집트 파라오들과 중국의 진시황 단 둘이며, 나머지는 등 떠밀려 삶의 무대에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다. 이런 주장은 “삶의 최고 발명품은 죽음이다.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의 도그마로 낭비하지 마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과 같은 울림을 전해준다. 지금 이곳의 삶을 멋지게 살자는 명품인생 제안은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위인은 너무 버겁다. 범인(凡人)은 너무 만만하다. 명품인생은 그 사이쯤의 선택이다”는 것인데, 당분간 윤광준 따라하기 붐이 일 것도 같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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