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긴장시킨 M혁명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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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남 이틀 뒤 이집트 혁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3일 방북한 이집트의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가운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집트 혁명은 이들이 만난 이틀 뒤 시작됐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이집트 시민 혁명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관영 통신·방송사와 노동신문은 지난달 25일 시작된 이집트 반정부 시위에 대해 14일까지 단 한 줄도 내보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무바라크 대통령-김일성 주석 간의 개인적 친분을 넘은 두 나라 간 전통적 유대 관계가 고려된 듯하다”며 “그 이면에는 이집트의 ‘M(모바일) 혁명’이 미칠 파장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 휴대전화를 개통한 통신사는 이집트의 오라스콤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역사적 이벤트인 105층의 유경호텔 완공작업도 이 회사가 맡고 있다. 오라스콤은 2008년 12월 북한 휴대전화 통신망 사업을 독점으로 시작했으며, 지난해는 통신망을 모두 3G로 바꾸고 평양 외 10여 개 도시로 사용권역을 확대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3분기 말 북한에 개설된 휴대전화는 30만1199대”라고 전했다. 당초 노동당 간부와 대외부문(무역·외교) 종사자에 국한됐던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확산됐고 북한 당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설 상황까지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발생한 열차폭발 사고가 휴대전화 기폭장치로 방중 귀국길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노린 것이란 판단에 따라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오라스콤을 통해 2008년 말 보급을 전면 재개했다. 개통 당시엔 삼성·노키아·소니의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나 지난해부턴 상표를 지우고 ‘평양’으로 통일했다. 다른 정부 고위 당국자는 “평양의 웬만한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거의 다 갖고 있고, 10대 후반이 소유한 경우도 많다” 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반김정일 움직임을 모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철저한 감시체제 속에 살아온 당 간부와 주민들이 도청될 게 뻔한 통화를 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북한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e-메일은 검열이 심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북·중 국경지역에 밀반입된 중국 휴대전화 등을 통해 중동의 시민 혁명 소식이 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미국의 골칫거리 스마트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수감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마약과 무기를 감옥에 밀반입하는 등 바깥세상에서와 같이 활개치고 있다”고 한 것은 ‘휴대전화의 힘’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미국에서의 스마트폰 폐해를 전하면서 중동의 M 혁명 바람이 주민들에게 스며드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정권이 아무리 바깥 소식을 차단하고 벽을 폐쇄하면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해도 이를 흔드는 바이러스는 계속 들어가고 있으며, 북한에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종·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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