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의 서울 트위터] “남은 음식 싸주세요” 당당히 말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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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해 추석 때 일입니다. 황금 연휴였는데 세상에, 배탈이 났죠. 죽을 먹다 물만 마셔야 하는 거지꼴이 됐습니다. 먹지 못하니 먹을 것만 생각이 났습니다. 자장면·탕수육·떡볶이·라면…. 정말 미치겠더군요. 참지 못한 저는 유령의 행색으로 근처 마트를 찾았습니다. 진열된 빵과 아이스크림에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마치 ‘순례자’처럼 그곳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주쳤죠. 푸드코트에서 깨작거리며 밥을 먹다 남기는 아이들을.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요. ‘다 먹으란 말이야’ 고함을 지르고 사라져버리고 싶은 걸 참았습니다.

 이후, 저는 “남은 거 싸주세요”의 달인이 됐습니다. 못 먹는 비참함을 겪어보니 ‘먹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혹여 반찬을 재활용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싸달라고 하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더군요. ‘웬 궁상’이냐는 주변의 눈길과 들고 오는 길에 풍기는 냄새, 그리고 기껏 가져왔더니 ‘(넌 맛있는 거 먹고) 왜 식은 음식이냐’는 가족의 타박까지….

  트위터에 고민을 올렸죠. 많은 분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음식점에선 적어도 밑반찬은 뷔페식으로 내놓자” “그릇을 깨끗이 비운 손님에게 쿠폰을 주자” “커피숍에서 보온컵을 쓰듯, 가벼운 도시락통을 휴대해 남은 건 담아오자” 등의 대안도 주셨고요. 상다리가 휘어지게 내놓는 문화야말로 음식물 쓰레기의 주범이라고 지적한 분이 많더군요. 찾아보니 서울시에서만 하루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양은 3447t, 연간 처리비용만 1000억원이나 됐습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내놓는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야 없겠지만 조그만 실천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저부터 “남은 거 싸주세요”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겠습니다. 그간 새침데기로 보일까 봐 못했던 “밥은 반 그릇만 주세요”란 말도 해보려고요.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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