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 엘턴 존 “미친 인생 살았다 … 기회 오면 뭐든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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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턴 존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이 11일 미국에서 개봉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선 팝스타 엘턴 존. 그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객석을 휘어잡는 열정을 보였다. [런던=AP 연합뉴스]

그에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60대 중반에도 “뭐든 기회가 오면 잡으라”고 권했다. 그게 비록 미친 짓처럼 보여도 말이다. 세계적 팝스타 엘턴 존(Elton John·64) 얘기다. 모험과 도전의 청년정신을 강조했다.

 엘턴 존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섰다. 동성 파트너인 데이비드 퍼니시(49)와 함께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Gnomeo&Juliet·11일 미국 개봉, 4월 국내 개봉)을 만들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을 장난감 요정으로 패러디했다. ‘노미오(Gnomeo)’는 ‘요정(Gnome)’에서 딴 이름이다. 그가 영화 총괄제작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21일 미국 LA 베벌리힐스 포시즌 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취재진의 시선은 당연히 엘턴 존에게 집중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그가 대리모를 통해 첫 아들을 얻은 뒤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선 자리였다. 엘턴 존 커플은 12년간 동거 끝에 2005년, 영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영화에서 빨강과 파랑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요정을 보니 공화·민주로 나뉜 미국 정치권의 대립이 연상된다.

 “영화를 처음 기획한 게 11년 전이다. 그때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상했다면 ‘미친 천재’일 것이다. 그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갈등과 분열을 끝내고자 하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았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는 데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무엇이든 양극화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바보 같은 일이다. 자식에게 부모가 믿는 것을 그대로 따르길 강요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설명이 더 필요하다.

 “저도 어린 시절엔 엄청난 보수파였던 어머니를 따라 당연히 보수파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보수’가 무슨 뜻인지 알자마자 바로 마음을 바꿨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옳다고 믿느냐다. 얼마 전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연 적이 있다. 이때 저를 도와주던 변호사 2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열혈 민주당원이고, 다른 한 명은 열혈 공화당원이었다. 모두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하나가 돼 힘을 합쳤다. 이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증오란 정말 헛되고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이다.”

 -영화음악도 직접 맡았는데.

 “영화사 측에서 ‘엘턴 존 음악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천재적 음악가인 제임스 뉴턴 하워드와 새롭게 편곡해 내 노래를 다듬고, 신곡도 작곡해 고르며 완성했다. 하지만 ‘엘턴 존 음악으로 만든 영화’라기보다 ‘좋은 음악이 있는 재미난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들 재커리를 품에 안고 있는 엘턴 존과 그의 동성 파트너 데이비드 퍼니시가 등장한 US매거진 표지.

 -아버지가 된 느낌은.

 “아빠가 되리라고는, 이런 큰 기쁨과 따스함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아들 재커리를 품에 안고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기에게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다. 집에 가면 재커리가 잘 먹는지, 잘 입는지, 기저귀 갈 때가 안 됐는지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무척 만족해 보인다.

 “재커리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너무도 평온해지고 안정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작은 영혼을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아이는 지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하얀 팔레트,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캔버스와 같은 상태다. 이 아이가 많은 사랑을 받고 가진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여전히 라이브 무대에 오른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대 위에 서는 느낌이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졌다. 인생의 균형을 갖췄기 때문인 듯하다. 편안한 집, 멋진 파트너, 좋은 친구들, 사랑하는 아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주제가)’이다.”

 -요즘 세대의 음악을 어떻게 보나.

 “모든 음악을 존중한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스윙과 재즈를 즐겼다. 로큰롤은 내 인생을 바꿨고, R&B 등 흑인 음악에도 심취했었다. 요새 즐겨 듣는 건 힙합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의 새 앨범이다. 영국 출신의 젊은 솔 아티스트 플랜 B의 음악도 아주 좋아한다. 난 새로운 것이 좋다. 젊은 아티스트, 새로운 음악이 갖는 에너지는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그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 정체된 기성세대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못 다한 일이 있다면.

 “내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 이미 초반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미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재미난 영화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외에도 뭐든 기회가 오면 잡고 싶다. 사실 내 인생은 99%가 즉흥적으로 벌어졌다. 큰 야망이나 인생의 목표, 전략 따위를 갖고 살고 싶진 않다. 인생의 다음 장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갑작스레 또 다른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으로 믿는다.”

LA 중앙일보=이경민 기자

◆엘턴 존=영국 출신의 전설적 팝 뮤지션. 1969년 영국에서 데뷔했다. ‘로켓맨’ ‘유어 송’ ‘캔들 인 더 윈드’ 등의 히트곡을 내며 세계적 스타가 됐다. 98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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