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일자리의 지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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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30면

사람이 오래 살게 돼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일하려는 노인층은 많아진다. 노후생활비가 부족한 데다 은퇴 후 여가활동이 마땅치 않은 우리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은퇴 후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미국에서 77%, 캐나다에서 69%나 된다. 미국 은퇴자 취업을 분석하면 현업에서 정년을 연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력을 바꿔 새로운 직종의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는 10% 수준이다. 또한 정신노동이 주류를 차지하며 파트타임이 3분의 1쯤 됐다. 자영업 창업은 10%밖에 안 된다.

한국에선 은퇴 후 일자리를 원하는 비율은 선진국보다 약간 낮은 60% 안팎이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는 육체노동 위주의 허드렛일이 많고 수입 역시 낮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취업자들은 근로자 평균급여보다 20%쯤 적은 돈을 받는다(2009년 노동부가 발표한 ‘고령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나이 차별을 법으로 금지한 미국의 고령 취업자도 13%가량 적다. 노인 일자리를 주선하려는 정부·사회단체들의 관심도 아직 낮은 편이다.

은행에 다니던 김모(55)씨는 4년 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퇴직을 했다. 고민 끝에 지인이 경영하는 중소기업에서 유통 분야를 맡았다. 월급은 형편없이 낮았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가을 경영난으로 다시 해고를 당했다. 김씨는 늦기 전에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창업으로 방향을 틀고 준비 중이다. 그러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창업자금을 날린 뒤 빈털터리가 되는 은퇴자들이 많아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김씨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 50세 전후의 베이비 부머 세대는 은퇴 후에도 30년 넘는 긴 시간을 더 살아야 한다.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선 연금·의료비 같은 재무적인 준비에 이어 취업·취미·봉사활동을 구상해야 한다. 은퇴생활 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 은퇴자들의 현실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은퇴 후 일자리를 위해 전문적인 교육·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선진국 은퇴자들은 적어도 10~20년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 40대, 50대부터 은퇴 후 일할 분야나 일자리를 정해놓고 주거지를 옮기거나 자격증을 준비한다. 1990년대 이후엔 은퇴자들이 대학에 새로 입학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비서로 은퇴한 여성이 대학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따 노인병원에서 일하는 사례가 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학원이나 사이버대학에 등록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붐이 일고 있다.

둘째, 취미와 봉사를 위한 일자리도 바람직하다. 외국은 연금제도와 사회복지 제도가 잘 발달돼 생계형 근로보다 인생 제2막에 적합한 뜻 있는 일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도 국내외 비영리단체 또는 종교단체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기여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일자리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이를 위해선 은퇴 전부터 취미·봉사활동에 눈을 뜨고 미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나름의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나이 들어선 돈·지위 못지않게 일·친구가 중요하다.

셋째, 자영업 창업 땐 신중해야 한다.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는 23.6%(지난해 6월 말)나 된다. 미국이 7%, 일본이 10%인 데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그런 만큼 은퇴 후 자영업을 택하면 경쟁도 치열하고 수익성도 낮을 가능성이 크다. 자칫 거액의 투자금이 장기간 묶이고, 조그마한 환경변화에도 큰 타격을 받기 쉽다. 따라서 은퇴자들은 젊은 창업자들과 달리 경험과 전문성·인맥 등을 강점으로 하는 컨설팅 업무나 무자본 창업의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재룡 연세대 경영학박사(투자론). 한국펀드평가 사장, 동양종합금융증권 자산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행복한 은퇴설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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