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換 방어' 논란

중앙일보

입력

11일 오전 9시30분 정각.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가 전화통을 잡고 산업은행이 개장 10~20초전 전날 종가보다 달러당 2원 높은 1천1백82원에 걸어놓은 50만달러 매수 주문에 맞춰 달러를 팔려고 시도했다.

국내 1백개 은행.외국은행 지점들이 동시에 매도주문을 낸 상황에서 이 딜러는 이날 운좋게도 산은이 내놓은 값에 달러를 파는데 성공했다.

산은은 곧 몇십초 간격으로 달러당 1천1백81원, 1천1백80원, 1천1백79.50원 순으로 낮춰가며 매수주문을 내놓았다.

이 딜러는 "산은이 달러를 높은 값에 사주는 것은 좋지만 거의 매일2~3원씩 높게 내는 방식을 되풀이 하면서 환율 하락폭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난센스" 라고 비판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원-달러시장 개장 직전이나 개장과 동시에 전일 종가보다 높은 환율로 달러 매수주문을 내는 '변칙적 개입' 을 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산은은 환율이 전날보다 높게 시작되면 환율하락 압력이 작아지기 때문에 이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딜러들은 ▶산은이 지난해 10월 이후 환율변동 경향이 뚜렷할 때마다 이 방식을 써 더이상 효과가 없고 ▶국책은행이 환율을 조작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산은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걸어놓은 물량을 외국은행이 받아가면 그만큼 국부(國富) 손실이라 비난하고 있다.

딜러들은 특히 금융결제원이 산은에만 개장 직전에 주문을 받아주는 것도 규정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산은은 이에 대해 "금융결제원에서는 수수료 수입 때문에 거래량이 많은 산은의 주문을 선호해 도움을 주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딜러들은 최근 국제금융센터에서 국내 은행.외국계은행 서울지점 딜러들과 재경부 담당자 등이 모인 자리에서 산은의 이같은 방식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개장 직후 고가 매수주문이 환율 하락폭을 줄이는 효과가 분명히 있고 산은의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 "이는 정부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환딜러들은 "국내 외환시장도 개방 이후 규모가 커져 자율적 조정기능이 있다" 며 "눈가리고 아옹식의 대응은 시장의 가격조정기능만 약화시킨다" 고 반박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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