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보이로 머물지 말고 맨이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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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국지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조충(曹沖)이란 사람 얘기입니다. 조조의 여덟째 아들이지요. 조조는 스물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에서 위나라의 첫 황제가 되는 조비와 동생 조식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나 황위를 노릴까 우려한 조비가 동생 조식에게 일곱 발짝을 걸을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내란 음모 죄로 처벌하겠다고 했을 때 조식이 지은 ‘칠보시(七步詩)’가 유명하지요. 나온 김에 감상해 보겠습니다.

 ‘콩 줄기 태워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의 콩이 우누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 이리 모질게 끓여대는가’.

 한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형제끼리 너무한다는 얘기지요. 이런 기막힌 은유를 일곱 걸음 만에 지어냈으니 참으로 대단한 문재입니다. 조비 역시 조식 못잖은 문장가였습니다. 하지만 총명하고 사리 밝기로는 두 사람을 합쳐도 조충을 따르지 못합니다. 어느 날 오나라의 손권이 코끼리를 조조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조조는 코끼리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었지요. 신하들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그 무게를 잴 방법을 생각해 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열 살도 안 된 충이 말합니다. “코끼리를 배에 태워 배가 가라앉은 위치를 표시한 뒤 따로 무게를 잰 돌을 실어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조충이 단지 총명하기만 했던 게 아닙니다. 주위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인품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조조가 아끼는 안장을 쥐가 갉아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안장을 보관하던 창고지기는 목이 떨어질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충은 그에게 “사흘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자신의 옷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조조 앞에 가서 근심 어린 표정을 짓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조조가 물었겠지요. “쥐가 옷을 갉아먹으면 옷 주인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제 제 옷을 갉았으니 걱정입니다.” 조조는 웃으며 터무니없는 말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합니다. 이후 창고지기가 쥐가 안장을 갉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조조는 “몸 가까이 있는 옷도 갉아먹었는데 하물며 기둥에 걸린 안장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웃어넘겼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형벌이 엄중했습니다. 그런데 사형에 처해질 사람을 충이 무죄 입증해 구제한 경우가 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이는 재치로만 설명될 게 아닙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깨달음이 있다는 얘기지요. 쉬운 말로 철 들고, 어른스럽다는 얘기입니다. 열 몇 살짜리가 말이지요. 조조는 그런 충에게 권좌를 물려줄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열세 살에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조조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로하는 다른 아들들에게 “이것은 나의 불행이지만 너희들에게는 행운이로구나”라고 말할 정도였지요. 만약 충이 권좌를 물려받았다면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이만도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요? 그렇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뜻도 못 펴보고 간 1800년 전 아이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겁니다. 물론 조충 같은 인물이 많은 건 아닙니다. 그래도 그게 오늘날 이 땅에 애 같은 어른들이 넘쳐나는 현상의 변명이 될 순 없습니다. 세상에 보이(boy)만 있지, 맨(man)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하나 엄마한테 묻지 않고는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자의식이 밭으니 쏠림은 깊을 수밖에 없지요. 그저 남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합니다. 말은 가벼워 흩날리고, 행동은 거칠어 쉬이 상처를 냅니다. 내면을 채울 생각이 없으니 겉모습에 치중하는 건 필연입니다. 서점엔 파리가 날고, 피부과·성형외과엔 줄이 줄지 않습니다. 부모 지갑은 비고 스펙은 높이 쌓이지만, 카드로 만든 성만큼이나 허술합니다.

 누가 그러냐고 따질 것도 없습니다. 거반 다 그렇습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을 본받지 마십시오. 진짜 어른이 되십시오. 조충 앞에서 부끄러웠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반딧불을 잡아 책을 읽었던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주인공 손강은 독서만 열심이었던 게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엄격했습니다.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청렴을 잃지 않았으며 거짓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힘 있는 사람을 좇지 않고 착한 사람을 가려서 사귀었습니다. 내면을 다지는 그런 노력이 후일 그를 어사대부 자리에까지 올려놓습니다. 오늘날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자리지요. 그 후보자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 여러분 세대까지 반복돼서야 되겠습니까.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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