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독재자 98명 스페인 집단 체포령

중앙일보

입력

76~83년 아르헨티나를 철권 통치했던 군부 지도자들에 대해 스페인 법원으로부터 무더기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영장을 발부한 사람은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 지난해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영국에서 체포되게 만들어 '슈퍼 판사' 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2백82쪽에 달하는 가르손 판사의 체포영장에는 호르헤 비델라, 에두아르도 비엘라, 레오폴도 갈티에리 등 3명의 전직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에밀리오 마세라 전 해군사령관 등 당시 군사평의회 위원 12명 등 모두 98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혐의는 테러와 학살.고문.납치.유괴 등 반인도주의적 범죄. 비델라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은 76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을 축출한 뒤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 8년 동안 강압 독재통치를 펼쳤다.

특히 이들은 이 기간 중 반체제 인사들을 용공 혐의자로 몰아 납치, 살해하거나 모진 고문을 가하는 등 이른바 '추악한 전쟁(Dirty War)
' 을 수행한 주역들로 지목받고 있다.

이들은 수감 중이거나 실종된 정치범들이 낳은 신생아 3백명을 유괴, 학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기간 중 9천명 이상의 반체제 인사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으나 인권단체들은 희생자가 최고 3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희생자 중에는 스페인인 6백명이 포함돼 있으며 이것이 가르손 판사가 아르헨티나 과거 군부 지도자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유다.

그러나 피노체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 가르손 판사가 그의 명성을 이번 아르헨티나의 경우까지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피노체트에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칠레와는 달리 아르헨티나의 경우 83년 민주주의로 복귀한 뒤 비델라 등을 재판에 회부, 종신형 등을 선고했고 5년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이들에 대해 사면조치를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의 과거 청산작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메넴 대통령은 가르손 판사의 수사협조 요청을 거부해 왔다.

페르난도 데라루아 차기 대통령 당선자 역시 과거 군부 지도자들을 '스페인은 관할권이 없다' 고 못박았다.

인권단체들은 그러나 "정부의 과거 청산작업이 미진하다" 며 가르손 판사의 체포영장 발부를 환영하고 있다.

이훈범 기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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